8차 세미나
망명과 자긍심

일라이 클레어, 『망명과 자긍심 - 교차하는 퀴어 장애 정치학』(2020)


발제: 이진아 교수(한국어문학부)

2021년 3월 5일



『망명과 자긍심 - 교차하는 퀴어 장애 정치학』(원제 『Exile and Pride: Disability, Queerness, and Liberation)』)은 선천적 뇌병변 장애인, 젠더 퀴어, 페미니스트, 친족 성폭력 생존자, 장애·환경·퀴어·노동 운동가, 그리고 시인이며 작가인 일라이 클레어(Eli Clare)의 대표적 저작이다. 1999년에 초판을 발행한 이후 현재까지 장애+퀴어+젠더+계급의 문제를 논할 때마다 여전히 중요한 시사점을 제기해 주는 책이다. 책의 가장 마지막에 수록된 에세이 <주머니 속의 돌, 심장 속의 돌> 중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젠더는 장애에 다다른다. 장애는 계급을 둘러싼다. 


계급은 학대에 맞서려 안간힘을 쓴다. 학대는 섹슈얼리티를 향해 으르렁댄다. 섹슈얼리티는 인종 위에 포개진다. 이 모든 것이 결국 한 사람의 몸 안에 쌓인다. 정체성의 그 어떤 측면에 대해서든, 몸의 그 어떤 측면에 대해서든, 글을 쓴다는 것은 이런 미로 전체에 대해 쓴다는 뜻이다.” 해당 구절은 이 책의 출발점과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한 바를 잘 보여준다. 


일라이 클레어는 이 책을 ‘집에 관한 책’이라고 말하며 집을 장소, 몸, 정체성, 공동체, 가족을 뜻하는, 우리를 품어주고 지탱해준 모든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그러한 집이 가능한 것은 오직 ‘다중쟁점정치’만을 통해서라고도 강조한다. 오늘날 비평과 학문에서 교차성(intersectionality) 이론에 대한 관심이 부상하는 것은, 일라이 클레어가 ‘미로’라고 표현했듯, 우리를 둘러싼 억압과 차별의 문제가 여러 측면을 함께 고려해야만 파악할 수 있는 복잡한 구조 속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망명과 자긍심』은 그러한 우리 삶의 조건과 문제를 섬세하게 들추어가며, 이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문제의 핵심에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