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차 세미나
기계비평들

임태훈 외, 『기계비평들』(2019)



발제: 이재준 HK교수

2022년 2월 4일 


기계 혐오를 이해하려는 좁은 통로 하나가 보인다. ‘기계비평’이 그것이다. 기계란 운동을 일으키도록 힘을 규칙적으로 반복 적용함으로써 작동하는 장치이자 장치들의 조합이다. 루이 스 멈포드가 고대 문명에서 소수가 다수를 지배할 수 있었던 정치 구조의 작동을 ‘원형 기계’ 라 불렀던 것처럼, 기계의 이러한 규정에 적합한 존재들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들을 ‘기계’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기계의 스펙트럼은 넓다.


임태훈은 자본주의와 기계를 두고 대립적이기보다는 구분 불가능할 정도로 뒤섞인 카오스모 스라고 말한다. 기계들은 저마다의 요청된 역할과 자리, 총량 등에 따라 배치되며, 지난 200 년간 진행된 이 배치를 추동한 가장 강력한 힘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이다. 기계가 무엇인가 와 연결되었다면, 다름 아니라 자본, 그리고 권력, 욕망과 함께 유동할 것이다.


이런 기계에 대한 비평, 그것이 기계비평인 것은 맞지만, 예술작품에 대한 여느 비평과는 다 르다. 기계비평은 기계의 완성도나 신기술의 소개에 관심이 없다. 오히려 그것은 기계에 연루 된 낯선 사건 앞에서 머뭇거리고 거기서 이유를 찾기를 바라며 또한 그것에 관해 이야기해보 길 기대한다.


여기서 그 사건이란 다름 아니라 기계의 우발적인 멈춤, 즉 ‘기계의 실패’이다. 고장, 불연 속성, 위협, 파국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기계 사건들은 무의지적인 상태에서 기계에 접속되어 있던 인간/비인간의 관계를 분절시킨다. 『기계비평들』이 다루고 있는 2014년 세월호 참사에 서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타고 다녔던 거대한 기계에게서 두려움과 공포를 느낀다. 2016년 구의역 사망 사건으로부터 우리는 늘 무관심하게 타고 내린 스크린도어에서 나와 연결되었던 기계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 위협적인 기계를 밀어내려는 혐오정서는 두려움과 이웃한 느 낌일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이로부터 인간적인 것들이 기계적인 것들과 재배 치된 아상블라주를 보게 될 것이다.


『기계비평들』은 이영준이 2006년 제안한 ‘기계비평’의 축적물을 모아 놓았다. 이 비평들은 10여년이 지나는 사이에 ANT를 포함해서 다양한 이론적 양분을 흡수하고, 이제는 새로운 개 체로 변화한 듯하다. 기계비평은 넓게는 물질을 포함해서 기계에 대한 혐오를 이해하려는 우 리에게 좁지만 분명한 통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