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과 혐오


이지형 교수(숙명여대 일본학과)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11년이 지났다. 미증유의 대지진으로 인한 천재인지 안전대책 미비로 인한 인재인지 그 원인과 책임 소재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분명한 것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전후로 일본 사회의 많은 영역에서 확연한 변화가 확인된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탈원전 정책과 혐오 문제다. 사고 이후 일본 전역의 원전 33기 중 10기만이 상업 가동을 재개했다. 혐한, 헤이트스피치 등의 혐오 양상은 더욱 심화되었다. 탈원전과 혐오, 일견 연결고리가 취약해 보이는 두 양상은 어떻게 맞물리는 것일까.


최근 국내에서는 탈원전 정책에 대한 비판이 분출하고 있다. 탈원전 정책의 비현실성, 비효율성을 지적하는 이들은 대안 없는 탈원전 정책 추진으로 인해 원자력발전소 자체가 혐오와 증오의 대상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한다. 원전이 오히려 환경 보전에 유리한 녹색 에너지이며 2050 탄소중립의 달성을 위해서라도 원전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그들에게 있어 혐오 대상으로 낙인찍힌 것은 원전 그 자체이다. 허나 ‘후쿠시마 이후’ 일본의 사례는 원전주의자들의 이러한 자기연민이 얼마나 기만적인 것인지를 여실히 폭로한다.


방사능 유출 오염으로 인해 오랜 삶의 터전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된 후쿠시마 주민은 15만 4천 명(2013.3월 시점)에 달했다. 강제 이주민 10만 9천 명, 자발적 이주민 4만 5천 명이었다. 흡사 전쟁 혹은 내전을 방불케 하는 강제 이주의 와중에 노령자와 병자의 죽음이 속출했고, 우울증으로 인해 자살로 내몰리는 이들 또한 적지 않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고향을 떠나 낯선 타지에서 생활하게 된 후쿠시마 주민들을 향한 혐오와 차별이었다.


후쿠시마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학교에서 따돌림과 놀림의 대상이 된 아이들, 차별과 혐오를 모면하기 위해 출신 지역을 은폐하거나 왜곡할 수밖에 없는 부모들. 타지에서의 고단한 경제활동 이상으로 그들의 삶을 옥죈 것은 무고한 그들을 향한 맹목적인 혐오와 차별이었다. 쏟아지는 혐오에 내몰리던 후쿠시마 출신 주부가 아이를 데리고 우연찮게 합류한 혐한 데모대 속에서 뜻밖의 동질감과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되고 이후 지속적으로 함께 행동하게 된다는 일본소설(야나기 고지, 『소토바코마치』, 2015)의 아이러니는 혐오가 이질적 약자들 사이에서 감염, 연쇄되는 구조를 차갑게 포착한다. 발터 벤야민이 말한 ‘예외상태의 정상상태화’가 원전 사고로 촉발돼 혐오의 감염과 증폭으로 현실화된 것이다. 이것을 일본만의 ‘예외상태’라고 과연 단언할 수 있겠는가?


여기서 환기되는 것은 다음의 테제다. “공해가 있는 곳에서 차별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차별이 있는 곳에서 공해가 일어난다.” 현대의 대표적 공해병으로 널리 알려진 미나마타병(유기수은중독) 연구자 하라다 마사즈미의 언급이다. 규슈 미나마타와 신일본질소비료공장, 후쿠시마와 원전 사이를 관통하는 접점은 근대산업 자본주의의 기간 시설이 들어서는 곳은 낙후된 변방이라는 엄정한 사실이다. 신일본질소비료공장의 모태는 흥남질소비료공장이었다. 지역발전을 명분으로 유치된 시설로 말미암은 혜택뿐만 아니라 그 폐해와 고통마저도 오롯이 지역민 그리고 하층민들의 몫이 된다. 혐오와 차별은 감수해 마땅한 원죄인가.


봉인된 진실은 원자력이 곧 핵이라는 사실, 따라서 전시에 얼마든 핵무기로 전용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관리자의 단순 실수에서 비롯된 체르노빌의 대재앙은 원자력=핵의 공포와 재난의 제어 불가능함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남겼다. 원전은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두려움의 대상이다. 치명적, 괴멸적 매개이기에 두려운 것이다. 원전을 통해 노골화되는 욕망과 혐오가 타자의 것이 아니라 실은 우리 자신의 것임을 알기에 벗어나려 하는 것이다. 지역, 계층, 권력의 위계가 교차하고 중첩되는 지점에 혐오는 내장되어 있고, 증폭된 혐오는 약한 고리의 취약한 존재를 향해 분출되기 마련이다. 나와 혐오 사이의 거리는 어떠한가. ‘우리 안의 혐오’를 응시함으로써 우리들의 참된 ‘예외상태’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지형

숙명여자대학교 일본학과 교수

대표저서 - 『과잉과 결핍의 신체』(2019),

 『일본 전후문학과 마이너리티문학의 단층』(2018,공저), 『젠더와 일본사회』(2016,공저) 

대표논문 - 「정체성의 섬뜩한 계곡과 혐오의 전유법」(2022), 

「오염, 감염, 혐오: 원폭소설로 보는 혐오 정동의 증식과 디스토피아문학」(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