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차 세미나
차별과 혐오를 넘어서

김수아 박미선 이혜민 한건수 한희정 홍성수 저




발제: 김지영(HK교수)


  ‘혐오’는 최근 10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 가장 뜨겁게 논쟁이 되어 온 키워드이다. 이 책의 새로운 시도는 ‘혐오’와 ‘문화다양성’이라는 각기 다른 맥락에서 논의가 진행되어 온 두 개념 사이의 상호연관성을 검토하고, 두 논의를 결합시킴으로써 혐오에 대한 대응을 모색하고자 한 데에 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집필한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최근 한국 사회에서 쟁점이 되어 온 다양한 사례를 바탕으로 혐오・차별과 문화다양성을 연결시켜 보려는 목적을 지닌다. 1장은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는 성차별적 언어, 외모 차별, 이주민 차별, 능력 차별 등을 통해 평등과 진정한 행복을 추구해야 할 학교에서 일어나는 차별과 혐오를 다룬다. 2장은 공공 임대 주택 건설을 반대하는 사례와 비하 호칭을 토대로 공공 임대 주택을 둘러싼 혐오와 차별을 살펴본다. 3장은 조선족 이주민 사회의 정체성을 비롯해 재한 조선족의 재현과 혐오 등을 살펴본다. 4장은 최근 한국 사회에서 일어난 성소수자 관련 사건들을 통해 성소수자에 가해지는 낙인과 혐오를 들여다본다. 5장은 온라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성차별적 혐오 표현에 대해서 짚어본다. 6장은 혐오와 문화다양성을 연결시키는 이론적, 정책적 의의를 살펴본다. 이 책의 강점 가운데 하나는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다양한 혐오와 차별의 사례를 대중적 눈높이에서 제시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통찰을 이끌어 내는 데에 있다. 


  이 책의 핵심적 논의는 ‘혐오’와 ‘문화다양성’의 관계를 다룬 서론과 6장에 축약되어 있다. 그에 따르면, 혐오·차별에 관한 논의와 문화다양성 논의는 모두 2차 세계대전 이후 유엔을 중심으로 세계 평화와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처음 시작되었지만, 두 논의가 발전해 온 경로는 상이하다. 즉, 혐오·차별의 문제는 자유권 규약, 인종 차별 철폐 협약, 여성차별 철폐 협약 등의 국제 인권 협약의 제정과 각 국가별로 제정된 혐오표현금지법, 차별금지법, 혐오범죄가중처벌법 등의 형태로 발전해 왔다. 한편, 문화다양성에 관한 논의는 문화다양성 보호·증진을 위한 각종 국제 협약과 유네스코가 교육, 과학 등의 영역에서 주도한 문화다양성 정책과 국제 협력의 과정에서 발전해 나갔으며, 그 과정에서 문화와 문화다양성 개념이 확장되면서 인권, 소수자 집단의 보호, 다양한 정체성의 이들과 공존, 다원주의 같은 개념과 결합해 왔다. 다시 말해, 혐오 대응은 주로 특정 행위를 금지하는 법 정책을 위주로 발전해 왔고, 문화다양성은 주로 교육, 홍보, 인식 개선 등 여건을 조성하는 쪽으로 발전해 왔다. 흥미로운 점은, 혐오 차별에 대한 대응을 논의할 때는 금지와 처벌 위주의 대응책만 논의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 지적되어 왔고, 거꾸로 문화다양성 논의에서는 좀 더 적극적으로 혐오와 차별을 금지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되어 왔다는 점이다. 이처럼 두 논의는 서로 다른 역사와 발전의 경로를 밟아 왔지만 동일한 이념적 목표를 추구해 왔으며, 이미 구체적인 정책과 과제를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결합을 통해 혐오와 차별을 근절하고 문화다양성을 증진한다는 목표를 향해 다가설 수 있을 것이라고 이 책은 주장한다.


  혐오・차별의 극복과 문화다양성 증진이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이 책의 핵심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혐오와 차별에 대한 기존의 논의에 문화다양성 관점과 실천을 연계해 보이고자 한 이 책의 시도에는 아쉬움도 남는다. 혐오・차별 사례에 대한 폭넓은 통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는 의문은,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문화다양성’ 논의는 구미와 한국 사회에서 기존에 논의되어 온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 담론, 혹은 일본의 ‘다문화공생’/‘다양성(diversity)’ 담론과 어떻게 연결 지어 사유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2000년대 이후 미국을 비롯한 구미 각국에서는 ‘다문화주의의 종언’이 선언되고, 다문화주의에 대한 거센 비판의 목소리가 대두되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한 비판의 핵심은 경직화된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 사회·경제적 구조 문제를 경시한 지나친 문화환원주의, 경박한 다문화 소비와 차별 문제의 비가시화 등으로 요약된다. 특히 9.11 이후 미국 사회에서는 국민 통합을 저해하고 안전보장을 위협하는 다문화주의에 대한 반감이 고조되면서 ‘다문화주의’ 테제는 급속히 힘을 잃어갔다. 한국 사회 역시 2000년대 중반 이후 정부 주도의 다문화주의 정책이 시행되어 왔지만, 반다문화주의 담론이 부상한 현 상황은 ‘다문화주의’의 내실을 비판적으로 돌아볼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의 경우 2005년에 중앙정부가 정책 제언에 처음으로 ‘다문화공생’을 차용한 이래로 여러 시행착오를 겪어 왔고, ‘문화다양성’은 기업과 대학의 ‘다양성(diversity)’ 추진 등 신자유주의와 결합한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현실 사례들을 상기해 볼 때, 이 책이 제시하는 문화다양성을 통한 혐오 극복이라는 해결 방안은 추상적 테제에 머물러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문화다양성’이 혐오와 차별을 넘어서기 위한 유효한 개념이 되기 위해서는 ‘문화다양성’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동반되어야만 한다. 이는 우리 모두의 과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