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정현규 교수(독일언어문화학과)
2022년 6월 3일
주디스 버틀러는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에서 현시대를 신자유주의적 자립과 개인의 책임이 무자비하게 강조되는 시대이며, 이로 인해 취약성과 불안정성이 무한정 재생산되는 시대라고 진단하고 있다.
현시점에서 권력관계의 핵심적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적 질서는 합리성을 내세우며 ‘자립’을 도덕적 이상으로서 요구하고 있는데, 이러한 이상에는 스스로에 대한 책임만을 지며 타인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 개인이 전제되어 있다. 하지만 그 책임은 자립이 구조적으로 훼손되어 있는 상황에서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한다는 의미의 책임일 뿐이다.
이러한 질서 속에서 취약성과 불안정성을 온몸으로 견뎌야 하는 존재들에는 당연히 그리고 여전히 여성,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장애인들이 있다. 저자는 이러한 취약성과 불안정성의 시대에, “취약성과 상호의존성의 극복이 아니라, 그것들이 살 만한 것이 되는 조건들을 만드는” 가능성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특별히 거리의 집회를 통한 신체들의 수행성과 연대가능성을 살피면서 “내가 올바른 삶을 영위하고자 한다면, 그 삶이란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낸 삶, 그들이 없다면 어떤 삶도 아닌 삶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같은 시각에는 젠더적 논점, 장애에 대한 논점도 함께 얽혀 있다.
가령 우리가 거리로 나갈 때는, 추상적 권리를 담지한 주체로서가 아니라, 거기서 걷고 움직일 필요가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며, 장애인의 경우 보행할 수 있고, 또 보행을 가능케 해 줄 포장도로와 기계를 가질 수 있는 권리를 수행적으로 노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요한 삶을 사는 데에 공적인 지지대의 형태들이 필요한 이러한 ‘신체’들이 의미화하는 양상을 살피는 것은, 동시에 이러한 의미화를 거부하거나 외면하는 권력관계를 밝히고, 이미 주어진 경계를 흐트러뜨리고 재고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따라서 공공장소 출현의 영역을 구성하는 차별적 권력 형태에 대한 비판 없이는, 무시되고, 부적합하다고 여겨지는, 따라서 불안정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이들이 구성하는 비판적 연대 없이는 출현의 장으로 들어갈 수 없다. 이러한 ‘권리를 가질 권리’는 특정 정치기관에 의존하지 않는다. 출현의 공간과 마찬가지로 권리를 가질 권리는 그와 같은 권리를 성문화하고자 하는 그 어떤 정치기관보다 선행한다.
그러한 권리는 실천될 때, 단결하고 연대하며 행동하는 이들에 의해 실천될 때 비로소 형성되는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버틀러에게는 ‘신체’들이 함께 거리로 나서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정한 형태의 상호의존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보여주는 방식들에는 출현의 장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