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이승훈 기초교양학부 교수
2022.09.02
베르브너의 「혐오 없는 삶」은 타자에 대한 혐오가 극복되었던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면서, 현대 사회에서의 혐오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실제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고든 올포트는 「편견」이라는 책에서 ‘접촉 가설’을 주장한다. 적대자들 사이의 접촉이 편견을 줄여 주며 평화로운 관계로 이끈다는 것이다. 낯선 사람들과 직접 만나서 접촉하게 되면 서로에 대해 가졌던 고정 관념이 파괴되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접촉이 긍정적 효과를 낳는 것만은 아니다. 접촉이 오히려 갈등을 심화시키는 사례들도 있다. 만남과 접촉은 부정적 고정 관념뿐 아니라 긍정적 고정 관념도 파괴하기도 한다. 접촉을 통해서 각자의 얼굴에서 ‘전형성’이라는 마스크가 벗겨질 때, 상대에 대한 실망과 불만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접촉은 지속되는 갈등을 각오해야 한다. 하지만 이 갈등은 상상이나 편견에 근거한 갈등이 아니라, 사실에 기초한 갈등이라는 점에서 길게 보면 반드시 부정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문제는 낯선 사람들을 어떻게 서로 접촉하도록 할 것인가이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만나게 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면, 접촉을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디어는 제도화된 접촉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낯선 타자와의 접촉을 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기자는 ‘전문적인 편견 제거자’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특종과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기자들은 충분한 취재도 없이 기사를 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어느 정도 고정관념에 기초한 기사가 매일 수백 개씩 쏟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편견과 혐오의 책임은 일정부분 미디어 탓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정치 공동체를 만드는 것도 접촉을 제도화하는 방법이다.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시민들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은 이미 하나의 특정한 범주의 사람들로 구성된다. 정치인들은 이미 성별, 학력, 계급 등 공유하는 동질적인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현실의 공동체를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 선거가 아닌, 제비뽑기로 정치인이나 공직자를 뽑는 방법은 현실과 유사한 다양한 구성원들의 공동체를 만드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다양한 사람들의 접촉을 제도화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점점 더 동질적인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현대 도시와 이웃들은 편견과 혐오의 또 다른 온상이 되고 있다. 스위스 취리히의 칼크브라이테의 다세대 주택은 다양한 구성원들의 접촉이 어떻게 편견과 혐오를 줄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세대, 계급, 성별, 인종 등 다양한 구성원들의 입주를 원칙으로 하는 이곳은 낯선 타자들의 접촉을 제도화한 긍정적인 사례이다. 접촉이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 경우는 한 사람을 하나의 개인이 아닌, 그가 속한 집단의 범주로 인식하는 경우이다. 집단 정체성이 너무 강해지면, 타자에 대한 공감이 아닌 적대감을 낳게 되는 것이다. 접촉이 사람들을 결속시키면서도, 어떻게 집단 정체성이 갇히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아프리카 보츠와나 사례는 접촉의 힘이 미치는 범위에 대한 질문의 좋은 사례이다.
다양한 부족으로 이뤄진 보츠와나에서는 모든 공무원들이 자신과 다른 부족 지역으로 보내도록 법률로 정하고 있다 이를 통해 부족적 갈등을 해결하고 국민 국가를 형성할 수 있었다. 하나의 국민이라는 상상의 이야기를 통해서 사람들을 결속시키면서도 ‘집단이 아닌 개인’으로서로 가까워질 수 있도록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긴장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보츠와나 사례 또한 접촉을 성공적으로 제도화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상의 사례들은 현실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나 믿음이 바뀐 경험들을 기록하고 있다. 사람들의 변화는 의지의 결단보다는, 환경이 촉발시킨 어떤 메커니즘이 작동하면서 일어났다. 사람을 바꾸려면 정치적 지렛대가 필요하다. 피터 콜맨이 지적한 것처럼, “합의를 위한 열쇠, 혹은 최소한 인간적 협력을 위한 열쇠는 차이가 아닌 공통점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는 공공 영역의 접촉과 대화에서 이런 작업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