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사 : 김관욱 교수(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개요>
콜센터 상담사는 감정노동자의 대표적 사례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상담사가 마주하는 현실은 단순한 감정 ‘이상의’ 노동 현장이다. 특히, 코로나19 시기 비대면 업무가 급증하면서 상담사의 업무량 또한 급증하였고, 새로운 상담 업무 내용들도 증가하였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신체적, 정신적, 감정적 피로감은 커져만 갔고 이것은 다양한 질병들로 이어졌다. 여기에는 밀집된 상담공간으로 인한 코로나19 집단감염까지 포함된다.
이번 발표에서는 콜센터 상담사들이 경험하는 일상적 어려움과 코로나19 사태가 촉발하거나 악화시킨 현실에 대해 다룬다. 이를 위해 최근 인문사회과학 영역에서 논의되고 있는 ‘정동’(affect) 개념을 소개한다. 정동은 ‘하루 종일 경험하는 일반적인 느낌’이자 그러한 느낌이 초래한 ‘몸의 행동할 능력의 증대 혹은 감소’로 설명할 수 있다. 그에 반해 감정이란 문화적으로 규정된 꼬리표라 할 수 있다. 상담사에게 요구되는 친절함이 곧 현대사회가 문화적으로 요구한 감정이라면, 그와 같은 과도한 ‘친절미소’의 강요로 인해 초조하고 긴장된 일상적 느낌 및 수동적이고 위축된 자세는 정동의 영역으로 이해할 수 있다.
상담사들은 과도한 업무량, 부족한 휴식시간, 그리고 고객(혹은 시민) 및 상사의 모멸적 발언들에 상시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여기에 코로나19시기 집단감염의 위험과 함께 집단감염의 온상이라는 낙인적 시선을 감내해야만 했다. 또한 과도한 업무량과 함께 새로운 상담 내용들이 제대로 된 교육 없이 강요되면서 고객과 시민에게 ‘죄송합니다’를 반복해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리기도 했다. 그와 같은 상황들이 중첩되면서 각종 근골격계 질병에서부터 방광염, 청력장애, 인후두염, 그리고 정신과적 장애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실제로 상담사 중 80%가 콜센터 취직 이후 새로운 질병에 걸리거나 기존의 질병이 악화되었다고 알려졌다.
이 같은 현실은 거의 모든 콜센터가 원청의 아웃소싱을 받는 하청업체로 이루어져 있다는 구조적 사실에 기반한다. 이로 인해 실적 위주의 과도한 업무 강요 및 상담사 간 실적 경쟁에 따른 인센티브제가 실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발표에서는 이 같은 시스템이 초래한 ‘얼굴과 가슴 없는 상담사’의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집단적 저항의 경험 또한 소개한다. 즉,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부당한 처우에 대항하고 파업을 실천할 때 상담사 노조원들이 어떠한 모멸과 혐오 앞에 놓이게 되는지를 보여주려 한다. 특히, 2021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지속되던 시기에 집단파업을 감행한 콜센터 노동조합이 경험해야만 했던 혐오를 앞세운 정동적 레짐에 대해 자세히 다룬다.
철학자 브라이언 마수미는 정동이 이데올로기적 분석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합리성으로 포장된 모든 이데올로기가 실제로 정동적 조작을 매개하고 있다고 본다. 최근 공정 및 능력주의 담론을 앞세운 혐오 정치가 그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수미는 ‘정동적 조작에는 정동적 조작’으로 대항해야 함을 강조한다. 본 발표에서는 혐오 정치의 일상적 조작에 맞선 콜센터 상담사들의 노동운동 경험을 통해 아래로부터의 정동적 조작이 가진 윤리적 잠재성을 다룬다. 즉, 고객과 시민 앞에 ‘죄송합니다’를 반복해야만 하고, 집단적 저항의 현장에서 ‘떼를 쓰고 있다’고 모멸당하지만, 그 한계 속에서도 어떠한 정동적 실천을 상상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지를 논의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