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월례발표회
다시 찾은 ‘언캐니 밸리’: 시몬 스톨렌하그의 『일렉트릭 스테이트』에 나타난 포스트휴먼 묵시록


발제: 박인찬 (인문학연구소 소장)


 브뤼노 라투르의 논문 「네 괴물을 사랑하라: 왜 우리는 우리의 과학기술을 자식처럼 돌봐야 하는가」(2012)는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1818)의 진정한 주제는 우리와 떼어 놓을 수 없는 과학기술을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하라는 데 있다고 설파해 주목을 받았다. 비록 방직기계를 너무 사랑한 자들에 의해 셸리의 수많은 동시대인들이 일자리를 잃고 만 명 이상이 러다이트 운동에 가담해 목숨을 잃었을지라도 말이다.


라투르의 주장은 티모시 모튼이 『초객체: 세계의 종말 이후의 철학과 생태』(2013)에서 제시한 비인간과의 공존이라는 주제와도 공명한다. 모튼의 묵시록적 세계에서 지구온난화와 대기오염 같은 기후위기는 비인간 객체들의 원인 없는 결과여서 비인간들을 돌보며 종말 이후를 사색하는 수밖에 없다. 철학적 관점은 다르지만, 비인간을 지향하는 모튼 역시 라투르 못지않게 현재의 위기를 야기하고 그 과정에서 희생당한 인간의 책임이나 고통에 대해 침묵하기는 마찬가지다. 


  모튼의 비인간주의 객체철학을 읽다 보면 로봇공학의 유명한 가설인 마사히로 모리의 ‘언캐니 밸리’(‘The Uncanny Valley,’ 1970)와 느닷없이 맞닥뜨리게 된다. 이 발표가 진즉부터 예견한 ‘언캐니 밸리’의 제2의 전성기 같은 것이 확인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다만, 장애, 질병, 신체에 대한 혐오가 문자적으로 나타나는 모리 논문의 그림을 모튼은 인종주의의 표상으로 곧바로 받아들이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인간형 로봇 개발자를 위한 실용적 제언의 목적에서 출발한 이 가설은 인간 정상성의 합법화를 보여주는 사례로서 정평이 나있다. 인간 종 중심주의 혹은 종간(種間 inter-species) 차별주의에 인간 중심주의 혹은 종내(種內 intra-species) 차별주의가 어떻게 착종되어있는지가 잘 드러난다. 인간형 로봇이라는 비인간(nonhuman) 종에 대한 인간 종 중심적 처방의 근저에 인간 정상성에 미치지 못하는 다양한 형태의 비인간(inhuman)에 대한 혐오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발표는 인간형 로봇에 입각한 종전의 ‘언캐니 밸리’를 21세기의 디지털 시대에 맞춰 재구상할 것을 제안한다. 21세기의 ‘언캐니 밸리’는 AI, 데이터, 인터넷 플랫폼에 기초한 디지털 시대의 ‘유령성,’ 즉 AI의 유령 같은 알고리즘을 비롯해 배후에서 눈에 보이지 않게 관여하고 조정하는 권력, 자본, 시장 같은 힘들을 포괄한다. 또한 디지털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자리를 잃고 유령화되거나 데이터 공급자이자 눈에 보이지 않는 노동의 도구로 전락한 인간들, 비인간 자본주의에서 양산되는 여러 형태의 비인간들이 포함된다. 이에 반해 모튼은 ‘언캐니 밸리’를 비인간 객체들의 존재론적 평원, 즉 ‘평평한 존재론’을 위한 거처로서 전유해 낭만화한다.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그래픽 SF 작가 시몬 스톨렌하그의 『일렉트릭 스테이트』(2017)는 실리콘 밸리의 미국 서부를 배경으로 기술과 권력의 결합이 가져올 포스트휴먼 특이점의 미래를 디스토피아적으로 조망한다. 독특한 화법으로 제시된 작품 속 세상은 확대된 언캐니 밸리 그 자체다.


전쟁 도구였으나 이제는 주검이 된 드론 기계와 인간의 잔해들, 기계와 하나가 된 채 가상현실 속에서 데이터와 쾌락을 맞교환하는 좀비 군상들, 인간에게서 추출한 정보와 기술의 융합으로 탄생한 괴물들과 사산된 아기들, 그리고 어느 장면, 어느 장소에서건 보일 듯 말 듯 희뿌옇게 서 있는 초거대 권력의 탑들은 이미 진행 중인 미래의 폐허를 예견케 한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결코 꾸고 싶지 않은 이 ‘아름다운 악몽’은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 같은 빅테크 자본주의의 파괴적 혁신과 기술로 무장한 신권위주의를 비판하는 반면, 그렇다고 인간 없는 비인간 객체들의 세상을 무작정 지향하지도 않는다. 인간과 기계의 공존에 앞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과 기계 혹은 기술을 가진 인간(들)과의 관계, 그리고 과학기술을 통해 드러나는 우리 사회의 참모습이기 때문이다.


 (본 내용은 2023년 8월에 독일 드레스덴에서 열리는 SFF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 예정인 “‘The Uncanny Valley’ Revisited: the Posthuman Apocalypse in Simon Stålenhag’s The Electric State”의 기초 자료로서 작성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