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월례발표회
잔향을 듣다: 현대 일본 사회의 혐오 현상과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기억


발제: 김지영 (HK교수)


  2023년은 관동대지진으로부터 100년을 맞는 해이다. 1923년 9월 1일 도쿄와 요코하마를 중심으로 한 관동지역을 강타한 매그니튜드 7.9규모의 강진과 그로 인한 화재는 사망자 약 91,344명, 행방불명자 13,275명, 중경상자 52,084명에 이르는 막대한 인명피해를 안겼다. 더욱 비극을 키운 것은 지진 직후에 사회주의자 및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근거 없는 유언비어가 확산되면서 자경단, 경찰, 군인에 의해 자행된 학살이다. 당시 7천명 이상의 조선인 및 중국인이 살해된 것으로 추산되지만, 일본정부는 아직까지 이에 대한 공식적인 진상조사나 사죄를 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거의 잊혀진 듯 보였던 조선인 학살의 기억은 근래 일본에서 급격히 부상한 혐오 정동의 확산을 계기로 많은 이들에게 플래시백되고 있는 듯하다. 2010년대에 일본에서 사회문제가 된 헤이트 스피치 시위에서는 “불령선인”, “조선인을 죽여라”와 같은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을 연상케 하는 구호들이 거리낌 없이 외쳐졌으며 20년에 재일코리안 집단 거주지인 우토로에서 2021년 발생한 방화사건은 증오범죄의 위험성을 다시금 상기시켰다. 


  이러한 상황과 관련해 가토 나오키는 『구월, 도쿄의 거리에서: 1923년 간토대지진 대량학살의 잔향』(2014, 한국어판 2015)에서, “보통 사람들이 민족차별(레이시즘)에서 유래한 유언비어를 믿고 학살을 저질러 버린 과거를 지닌 도시. 언제 다시 대지진이 와도 이상하지 않은 도시. 그곳에서 지금, 과거와 똑같이 “조선인을 모두 죽여버려"라는 구호가 버젓이 외쳐지고 있다. 이는 너무나 곤란한 사태가 아닌가”라고 반문하고, “그 학살의 ‘잔향’은 거리에도,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울리고 있다. 90년 전의 길 위를 다시 찾는 것은 현재까지 이어지는 잔향을 듣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하며 도쿄의 여러 지역에 깃들어 있는 학살의 기억을 증언과 기록을 발굴하여 통해 소개한 바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을 배경으로 본 발표에서는 현대 일본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혐오 정동의 부상 및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과 관련된 역사수정주의를 살펴보고, 동시대 일본문학에 나타난 관동대지진의 기억과 제노사이드에 대한 공포감을 세 명의 재일코리안 작가의 표현을 통해 살펴보았다. 


  재일코리안 2.5세대 작가 후카자와 우시오는 2010년대에 일본의 헤이트 스피치 확산을 중심적 주제로 한 소설 『초록과 빨강 (緑と赤)』(2015)에서, 신오쿠보의 헤이트 스피치를 목격한 후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재일코리안 지영이 시부야 거리를 걷다가 문득 머릿속에 헤이트 시위 장면이 플래시백 되면서 “만약 큰 재해가 일어나기라도 한다면,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관동대지진 때처럼 갑자기 나를 습격하고 학살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공포에 사로잡히는 장면을 그려낸다.


  이용덕 작가의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2020)는 강렬한 제목이 상기시키듯 점점 더 고조되는 배외주의와 혐오 확산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소설이다. “배외주의자들의 꿈이 이루어졌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기억을 독자에게 환기하면서 극단적 배외주의가 현실화된 디스토피아를 그려보임으로써 현재 일본사회의 차별과 혐오가 임계점에 달했음을 독자에게 일깨운다.


  한편 재일코리안 2세 작가 황영치가 2015년에 발표한 소설 『전야』에는 재특회(재일특권을 허용치 않는 시민 모임)를 모델로 하는 가상의 배외주의 단체 ‘ZT그룹’가 등장한다. 배외주의가 횡행하는 현대 일본을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전야’와도 같은 시대로서 바라보는 이 소설에는 동시대 일본에 대한 작가의 우려가 담겨있다. 


  이처럼 근래 재일코리안 작가의 작품에는 제노사이드에 대한 불안감과 공포가 짙게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혐오와 폭력에 맞서 공생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상상력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인가?


  본 발표에서는 일본의 문학 연구자이자 비평가인 도미야마 이치로가 프란츠 파농을 오키나와 연구의 맥락에서 다시 읽기 한 작업에 주목해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일본 내 대표적 소수민족인 오키나와인과 매저리티 일본인 사이의 관계에 천착해 온 도미야마는 저서 『시작의 앎: 프란츠 파농의 임상』(2018)에서 관동대지진 당시 오키나와에서 상경한 히가 슌초와 그의 친구가 표준어와 다른 말씨로 인해 조선인으로 오인받아 죽임당할 뻔한 일화를 소개한다.


히가와 그의 친구는 “일본인이 아니라 조선인이지?”라는 자경단의 심문에 “조선인이 아니다”라고 주장함으로써 가까스로 폭력을 회피하는데, 이 장면에서 도미야마는 오인받을 수도 있는 그들의 신체는 이미 심문을 받고 있으며, 문답무용으로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고 느끼고 있는 시점에서 폭력은 이미 작동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즉 히가는 이때 폭력에 노출된 신체감각으로서 이러한 폭력을 감지하고 있는데, 관동대지진 당시 히가를 오인할 수 있었던 폭력은 후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오키나와전의 전장에서 일본군에 의해 자행된 오키나와 주민 학살로 귀결되는 폭력에 다름아니다. 그렇기에 도야마에 따르면 중요한 것은 “나는〇〇가 아니다”라고 오인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폭력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바로 곁에서 작동하고 있는 폭력을 이미 남의 일이 아닌 아픔으로서 감지하는 것이 필요하며, 함께 휘말리며 떠맡는 가운데 구축되는 공동성으로부터 진정한 앎은 시작된다고 그는 주장한다. 


  이러한 도미야마의 말에 의거해서 보자면, 지금 일본의 언어공간에 울리는 관동대지진의 잔향을 폭력의 예감으로서 감지하고, 곁에서 작동하고 있는 폭력을 이미 남의 일이 아닌 폭력으로서 감지하는 것에서부터 역설적으로 현대 일본을 뒤덮고 있는 혐오나 폭력에 저항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열리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야말로 관동대지진 학살의 기억이 지금 일본에서 지닌 현재적 의미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