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 정치경제

박인찬 교수(숙명인문학연구소 소장)



옥스퍼드 영어사전이 2016년에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포스트-트루스’(Post-truth)와 혐오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혐오 정치.’ 이 둘은 우리 시대를 흔드는 감정 정치의 양 날개와도 같다. 객관적 사실보다 감정과 신념에 더 호소하는 포스트-트루스 현상이 가짜뉴스와 거짓 정보에 빠져드는 인간의 심리적 편향과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고 하는 태도에 의존한다면, 특정 대상을 겨냥한 혐오의 정치와 포스트-트루스가 만날 때 그 파괴력은 더욱 배가 된다. 포스트-트루스 정치를 ‘파시즘의 전 단계’라고까지 부르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정치와 감정의 포스트-트루스적 ‘밀월’이 얼마나 커다란 불행을 가져왔는지 우리는 기억한다. 미국을 가짜뉴스와 혐오 발언과 백인 남성 우월주의로 ‘다시 위대하게’ 만든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부터 나치의 반(反)유대주의, 일본 극우파의 혐한(嫌韓), 우리나라의 오래된 지역감정과 중동 난민에 대한 편견에 이르기까지 그 예는 수없이 많다. 어디 그뿐인가. 얼마 전 정치권에서 제기된 여성가족부 폐지의 이슈화는 젠더갈등이 정치세력의 확장에 효과적으로 이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혐오 정치의 또 다른 예이다. 


포스트-트루스나 혐오정치가 효과적일 수 있는 것은 그것들의 수행적인 특성 때문이다. 원래부터 혐오스럽거나 증오스러운 대상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집단 또는 그것이 길러낸 개인들이 그렇게 느끼고, 인지하고, 표현함으로써 발생하는 것이다. 가짜뉴스가 유통되고 전파되는 과정에서 진리로서의 값, 즉 ‘진리값’을 가지게 되는 것처럼, 혐오도 그것이 발화되고 유통되는 과정에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값을 얻고 의미 효과를 만들어낸다. 또한 혐오는 대상이 반드시 동일한 것은 아니어서 필요에 맞게 다른 대상으로 갈아탈 수도 있다. 이렇게 창출된 혐오 효과는 어떤 정치 세력에게는 값나가는 물건이 된다. 혐오가 ‘정치값’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여성가족부 폐지 논쟁에서 누군가가 부추긴 젠더 갈등에 논쟁의 성패와 상관없이 상당한 ‘정치값’이 매겨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게다가 혐오의 유통 과정에서 잉여가치에 해당하는 잉여 효과가 발생하게 되면 혐오의 파급력은 더 커진다. 


이 과정은 자본주의 상품 경제와 매우 유사하다. 실제로 혐오는 경쟁력 있는 상품이 된 지 오래다. 그 결과 증오산업이라 불리던 게 이제는 사람들의 관심을 이용해 돈을 버는 소위 ‘주목 경제’(attention economy)의 주요 라인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혐오와 갈등의 조장 뒤에서 득표수를 재빨리 암산하는 정치인들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원색적인 혐오와 모욕을 즐기는 콘텐츠 제작에 혈안이 된 개인 유튜브나 대안 매체의 제작자들은 광고 수익의 ‘혐오값’에 눈멀어 있다. 이러한 혐오경제는 그 자체로 이미 정치적이다. 그것이 가져오는 잉여효과는 이윤추구를 넘어 사회적 분열로 이어질 뿐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즐기며 결속을 다지는 배타적 집단을 또한 양성한다. 


그러므로 혐오의 정치경제는 혐오를 ‘사회적 문제’로서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혐오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게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형성된 감정이자, 사회의 깊숙한 문제를 드러내는 징후이고 증상이다. 혐오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여러 감정들과 뭉쳐 다니면서 힘을 키우기에 간단치 않다. 그것을 우리의 타고난 본성으로 단정하는 순간 우리는 문제로부터 멀어진다. 자본주의적 삶의 양식이 인간 본성에 가장 적합하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타고날 때부터 특정 인종을, 특정 성소수자를, 특정 종교를, 우리나라의 특정 지역을, 혐오하는 사람은 없다. 오랜 진화과정 속에서 습득된 감정이라 할지라도 문제는 왜 이 시대에 유독 혐오라는 감정이 증폭되다 못해 발굴되느냐는 것이다. 


혐오가 무언가를 가리고 있는 거라면 그것에 주목해야 한다. 정작 혐오해야 할 대상은, 문제의 본질은, 다른 데 있을 수 있다. 우리를 서로 반목하게 하는 그것에 분노해야 한다. 우리를 혐오의 소비자이자 재생산자로 만드는 혐오의 조장자, 부당 이득자, 공모자들도 따져봐야 한다. 또한 진실의 퇴조에 기생하는 가짜뉴스에 대해서도 부단히 따지고 알려야 한다. 혐오의 정치경제가 복잡한 만큼 그에 대한 대응도 복잡하고 지난할 수 있다. 그럴수록 새겨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어떤 사회를 꿈꾸느냐일 테다. 





박인찬

숙명여자대학교 영문학부 교수 / 숙명인문학연구소 소장

대표저서 - 『소설의 죽음 이후: 최근 미국 소설론』(2008), 『토머스 핀천』(2006)

대표역서 - 『블리딩 엣지』(2020), 『바인랜드』(2016), 『느리게 배우는 사람』(2014), 『붉은 밤의 도시들』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