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차 월례발표회
소속과 연대, 그리고 보편주의

발제 : 이승훈 (공동연구원) 


  사회적 연대는 소속(belonging)과 관련하여 논의해왔다. 한 사람이 특정한 집단에 소속된다는 것은 그 구성원들이 일정한 견해와 행동에 관한 일련의 가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곤 한다. 또한 집단 성원들 사이에 어느 정도 유사성이 있다고 가정되고, 집단 성원의 속성이 개인 정체성을 상당한 정도로 규정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한다.


  다원화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 사회에서도 연대는 많은 경우 소속과 관련하여 논의된다. 비록 추구하는 목표와 방향을 다르지만, 불확실하고 불안한 현대 사회에서 ‘소속을 통한 연대형성’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는 점에서는 극우나 좌파(?)는 크게 다르지 않다. 혐오 세력이나 정체성 정치나 모두 집단에 소속되었다는 것이 연대감을 형성하는 근거로 제시된다.


  수전 니먼은 자신의 책 『워크는 좌파가 아니다』에서 워크 운동이 소속과 관련된 부족주의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진정한 좌파가 아니라고 비판한다. 워크(woke)는 인종 차별에 대한 경계를 의미하는 말로, “깨어있다”(wake)라는 말의 과거형이다. 이 말의 의미처럼 ‘워크’는 전통적으로 좌파의 것으로 여긴 감정들, 즉 주변으로 밀려난 이들과의 공감, 억압받는 이들의 어려운 처지에 대한 분노, 역사적으로 저질러진 잘못은 바로잡아야 한다는 굳은 결의 등에서 태어난 것이다. 니먼에 따르면, 워크 운동은 ‘입장 인식론’의 이론적 입장을 전제하고 있다. 입장인식론이란 특정한 정치적 관점이 그가 속한 집단적 배경에 의해 결정된다고 가정한다. 이러한 잘못된 이론적 전제 때문에 워크 운동을 엉뚱한 방향으로 탈선시켰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니먼은 사회 변혁과 해방을 추구한 좌파의 전통은 보편주의, 정의, 진보를 지향하였다. 하지만 최근 워크나 정체성 정치 세력들의 ‘입장 인식론’의 전제는 보편주의 대신 부족주의를, 정의 대신 권력을, 진보 대신 허무주의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사회 변혁에 대한희망을 파멸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부족주의의 영향을 좌파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최근 인터넷 극우 또한 부족주의 전략을 활용한다. 소수자의 요구가 보편적인 인권이 아니라 특정 집단의 소속에 의한 권리에 불과하다면, 다수도 자기들 권리를 고집하는데 활용될 수 있다. 오늘날 극우의 논리가 그것이다. 모든 집단들이 다 자기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것이 허용된다면, 백인 유럽인이라고 해서 자기들 권리를 위해 일어서지 말하는 법이 있는가라며 니먼은 질문한다. 오늘날 온라인 우파는 자유를 억압한다고 의심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위반을 특징으로 한다. 정치적 올바름, 페미니즘, 다문화주의 등에 대한 이들의 반감은 자신들의 자유로운 삶과 테크놀로지를 영위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좌파와 극우 모두에게 발견되는 이러한 현상은 보편주의를 상실하고 자신의 소속과 가치를 동일시하는 부족주의로 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특정한 원칙이 아니라, 원칙에 입각하여 행동한다는 생각 그 자체였다는 것이다. 보편주의적 인권이나 정의 등에 대한 원칙에 대한 신뢰의 상실은 좌파 진영의 분열뿐 아니라, 온라인 극우 세력들이 등장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부족주의를 넘어서는 보편주의적 연대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대처 수상의 유명한 말처럼, 우리 보통 사람들도 이제는 경제적 합리성이 지배하는 세상 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믿게 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세상이 얼마나 비합리적인지는 매일같이 입증되고 있다. 토마 피케티는 이를 이렇게 요약한다. “사람들에게 오늘날 존재하는 사회경제적 조직과 계급 불평등에 대한 신뢰할만한 대안이 없다고 말한다면, 이들은 대신 자신의 국경과 정체성을 수호하는 일에 희망을 걸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에서도 한번 돌아봐야 할 주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