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선(숙명여대 사회심리학과 교수)
지난 10여 년간 내가 심리학자로서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은 “이 사람이 사이코패스인가요?”였다. 사실, ‘사이코패스’는 여부를 따지는 이분법적(dichotomous) 개념이 아니라 ‘psychopathy(정신병질)’라는 성향의 높고 낮은 정도를 따지는 연속적(continuous) 개념이다. 더구나, 범죄 사건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있어 그 맥락과 원인, 배경 등 복합적인 요소에 대한 고려는 생략한 채, 단순히 범죄자가 ‘사이코패스’인지 아닌지에만 관심을 두는 질문이 쏟아질 때마다 환멸을 느낄 지경이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들어 “MBTI가 어떻게 되세요?”라는 질문이 일상생활에서나 미디어, SNS를 통해 끊임없이 등장할 정도로 MBTI 열풍이 몰아치고 있다. 한때의 유행처럼 떠돌다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던 MBTI 열풍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은 채, 직장 면접에서 지원자에게 MBTI 유형을 물어보는 일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을 정도로 대인관계나 직업, 진로와 관련해서 더욱 광범위하게 일상을 파고들고 있다.
그러나, MBTI 검사의 이론적 기반의 한계나 신뢰도나 타당도 등의 방법론적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정말 두려운 것은 사람의 성격을 16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개인을 특정 유형으로 분류하는 MBTI 검사가 편견을 조장하고 배제와 차별의 도구로 쓰일 위험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한 채용 공고에서 특정 MBTI 유형을 언급하며 MBTI 검사가 지원자를 배제하는 자격 제한의 기준으로 쓰여 화제가 된 바 있다. 특히, 개개인이 하나의 우주처럼 복합적이고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이라는 존재를 알아가는 과정은 생략된 채, 단순히 그 사람이 I인지 E인지 그 이분법에 관심을 두고, 사람의 행동에 있어 그 맥락과 원인, 배경 등 복합적인 요소에 대한 고려는 생략한 채 단순히 그 사람이 T라서, 혹은 F라서 그 행동을 한 것으로 치부하는 행태를 볼 때마다 절망스럽기까지 하다. 심리학자가 갖춰야 할 기본적 소양은 ‘사람에 대한 관심’이라고 생각하는데, 역설적으로 심리학자로서 최근 가장 많이 받는 이 MBTI에 대한 질문은 오히려 사람에 대한 얕고 피상적인 답변만을 구하는 행태의 반영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BTI 열풍에서 그나마 희망을 찾자면, MBTI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결국은 사람을 더 잘 이해하고, 더 효과적으로 소통하려는 시도의 일환이라는 점이다. 심리학에서는 모든 사람이 나름대로 소박한 심리학자(a naive psychologist)라 말하는데, 즉 우리 모두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나름의 이유를 찾고 현상을 해석하려 한다. 결국, MBTI 열풍 또한, 일상에서 나와 갈등을 빚는 상대에 대해 회피하고 포기하기보다는 더 잘 소통하려는 노력의 일환일 수 있으며, 대인관계 시작과 유지 시 상대를 더 잘 알고 이해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즉, “MBTI가 어떻게 되세요?”라는 질문은, 곧 “저는 당신이 궁금해요. 알고 싶습니다.”라는 말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
2024년도 논문
박지선. (2024). 데이트 폭력 통제행동과 인지적 유연성: 부정적 문제지향과 경계선 성격의 순차매개효과. 형사정책, 36(1), 37-62.
박지선, & 이서진. (2024). 전위공격성 및 그 하위요인에 미치는 취약성 자기애의 영향-완벽주의적 자기제시와 사후반추사고의 순차매개효과. 범죄수사학연구, 10(2), 121-145.
강진설, & 박지선. (2024). 내현적 자기애와 데이트 언어폭력 간 관계에서 부정 긴급성과 반응적 공격성의 순차매개효과. 경찰학연구, 24(4), 73-104.
윤혜성, & 박지선. (2024). 정서표현 양가성이 데이트 폭력에 미치는 영향: 관계적 공격성의 매개효과. 한국심리학회지: 여성, 29(2), 131-146.
박은선, & 박지선. (2024). 데이트 관계에서 내면화된 수치심이 통제행동에 미치는 영향: 자기몰입의 매개효과. 한국심리학회지: 문화 및 사회문제, 30(1), 35-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