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김혜윤(한성대학교 크리에이티브 인문학부 강사)
오늘날의 기후 위기는 행성적 차원의 불평등 문제와 교차하고 있으며, 기후 소설(cli-fi)은 이러한 사회적 불안과 불만의 복잡한 양상을 조명하는 서사적 도구로 기능한다. 이 연구는 현재의 기후 위기가 인종, 경제, 지정학적 구조와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규명할 포괄적인 설명과 새로운 호명 작업이 필요하다는 진단 아래 오늘날을 ‘포스트-인류세(Post-Anthropocene)’ 시대로 명명하고 기후 소설 장르 연구를 통해 유럽 중심적이고 식민주의적 포스트휴머니즘 서사에 도전하는 탈식민화의 필요성을 제기하고자 한다. 특히 기후 소설이 인종주의와 계층 차별의 문제를 다루는 방식을 분석함으로써 포스트-인류세 시대의 기후 소설이 인종주의, 혐오와 차별, 행성적 차원의 위기를 어떻게 재구성하고 재해석하는지 탐구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필자가 제기하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1) 포스트-인류세란 무엇인가? 2) 왜 인류세를 넘어서는 개념적 틀이 필요하며, 인류세와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3) 포스트-인류세 기후 소설은 인종, 환경, 지본주의의 교차점을 어떻게 다루는가? 4) 기후 소설은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인종적 위계 구조를 어떻게 비판하고 이에 도전하는가? 5) 기후 소설을 통해 행성적 차원의 위기 문제에 대응하는 탈식민적 미래 그리고 대안적 공동체를 상상할 수 있는가?
필자가 사용하는 포스트-인류세라는 용어는 기후 위기를 단순히 환경적 문제로 축소시키지 않고,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적 역사와 현재의 불평등을 연결하여 기후 정의를 위한 새로운 정치적·윤리적 패러다임을 제공하려는 시도이다. 이는 억압과 착취의 구조를 해체하고, 탈식민적이며 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한 미래를 모색하는 데 필수적인 개념이다.
이 지점에서 기후 소설은 단순히 미래에 대한 경고에 그치지 않고, 현재의 인종주의, 계층 차별, 자본주의 문제의 얽힘을 드러내며 이를 비판하는 역할을 한다. 킴 스탠리 로빈슨(Kim Stanley Robinson)은 “우리는 모두 SF 소설 속에 살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기후 위기와 급속한 사회적 변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SF적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특히 기후 소설은 SF의 하위 범주로서, 단순한 상상이나 예측이 아닌 현실을 반영하는 새로운 리얼리즘으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로빈슨의 관점을 뒷받침 한다. 이러한 시각은 동시대의 기후 소설이 현실의 불평등과 위기를 서사화하는 방식과 깊이 맞닿아 있다.
N. K. 제미신(N. K. Jemisin)의 <부서진 대지> 삼부작은 기후 소설이 사회적 불평등과 억압을 어떻게 서사적으로 드러내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작품 속 오로진들은 지각 에너지를 다루는 독특한 능력으로 말미암아 공동체로부터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 된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유색인종, 특히 미국의 흑인들이 경험하는 구조적 차별을 반영하며, 인종적 위계와 불평등의지속성을 고발한다. 제미신의 작품은 기후 위기와 사회적 불평등이 어떻게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지 탐구할 수 있는 사고 실험의 장을 제공하며, 우리는 이를 통해 탈식민적 미래와 대안적 공동체의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