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김경옥(HK연구교수)
미국의 SF·판타지 작가인 어슐러 K. 르 귄(Ursula K. Le Guin)의 『세계를 뜻하는 단어는숲이다』(The Word for World is Forest)는 가상의 헤인(Hain)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헤인 연대기(Hainish Cycle) SF이다. 르 귄의 SF는 “삶의 상호 의존성과 가능한 다양성을 강조하는 철학과 일치하는 미래의 역사”(Harold Bloom 191)라는 평가처럼 『세계를 뜻하는 단어는숲이다』(앞으로 『숲』으로 칭함)는 비인간 세계가 구현하는 다른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의 가치와 가능성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하고 조화를 이루는 데 필요한 지혜를 보여준다. 또한 물질과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비인간에 대한 인간의 과도한 착취와 억압은 결국 인류의 종말을 초래할 수밖에 없음을 재현한다. 애스시인은 자연, 특히 나무가 숲과 함께 공존하며 비이원론적이고 꿈에 기반한 세계관을 고수하는데 이것은 생물 다양성의 감소, 기후변화, 대규모 삼림 별채 등으로 인해 파괴되는 인류세 시대의 생태적 비전으로 해석될 수 있다. 본 연구는 애스시 사회가 자연과 맺고 있는 상호의존적 관계와 그들의 꿈과 무의식이 생태적 비전을 형성하는 방식에 주목한다. 애스시인이 자연을 자원으로 삼기보다는 생명의 일원으로 여기는 태도는 인간 중심적 사고로 인해 위기에 처한 생태계를 치유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또한 애스시 사회의 생태적 윤리가 생태적 균형과 문화적 다양성의 가치를 통해 인류세 위기 대응에 어떠한 시사점을 줄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숲』은 지구와 식민지 행성인 애스시를 배경으로 인간중심주의와 식민주의, 생태학적 위기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1970년대 쓰인 작품이지만 “SF와 자연을 소재로 한 문학은 현재와 미래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Murphy 89)는 측면에서 인류세 시대의 생태 위기와, 기후 변화의 문제를 재조명하며 자본주의적 탐욕과 자원 착취가 생태계와 문화적 다양성을 어떻게 파괴하는지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소설의 결말에서 애스시인은 지구인을 자신들의 땅에서 몰아내는데 성공하지만 낙관적인 메시지를 전달하지는 않는다. 즉 “애스시인의 생태적 파괴는 고립된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지구에 저지른 일이었다. 인간과 지구 모두를 황페화시키는 우리의 경향에 대한 암울한 전망”(Barnhill 491)이었던 것이다. 본글은 생태학적 재앙과 문명의 폭력에 맞서 삶의 원천을 지키는 애스시인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리고 의식하지 못하는 것, 인간존재와 산과 바다와 나무와 같은 비인간 존재에 대한생태적 비전을 살펴보고자 했다.
『숲』에서 애스시인은 자연과의 연결을 통해 공동체적 삶을 영위하며 내면의 성장과 평화를얻을 수 있다. 물론 『숲』의 애스시인의 꿈과 생태 비전의 관계성은 환상적이고 무의식적 측면이 강하지만 자연의 경이로움은 인간의 지식과 인식 너머에 존재한다. 르 귄은 바로 이러한 점을 포착하고 있는 것이다. 르 귄은 자연과 인간 간의 공생적 관계 회복이 궁극적인 구원의 길이며, 인간과 자연이 서로 책임지고 돌보는 생태적 비전을 제안하는 동시에, 지구와의 관계를 새롭게 이해하고 회복하는 과정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지혜를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