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전환기, 미디어 리터러시 방향을 묻다


심재웅(미디어학부)


우리나라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3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누구나 미디어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뭐가 급하냐, 나중에 해도 되는 것 아니냐 하는 인식이 팽배하다. 미디어 리터러시 연구의 대표적 학자 데이비드 버킹엄(David Buckingham)은 오늘날의 미디어 리터러시 담론이 실천적 과제라기보다는 수사적 수준에서 다루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미디어 리터러시가 21세기 필수 역량으로서의 본질적 논의보다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휘둘리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우리나라 상황에도 유의미하다.


실제로 2007년 이래 여섯 차례에 걸쳐 미디어교육지원법안이 발의되었으나, 현재까지 입법화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는 미디어 교육의 주체와 실행 방식에 대한 의견 불일치, 소관 부처나 관계 기관 간의 관할권 경쟁과 견제, 협업과 정보 공유 체계 부재, 그리고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 대한 철학의 부재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동안 방송통신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교육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는 각기 독립적인 관점에서 미디어 교육을 시행해 왔다. 법안 또한 각 부처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해 산발적이고 경쟁적으로 발의되어 정책적 일관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다행히 제도적 변화가 조금씩 감지되고 있다. 2020년 8월 27일, 방송통신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는 ‘디지털 미디어 소통 역량 강화 종합계획’을 공동으로 발표하면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정책 방향을 구체화했고, 2022년 개정 교육과정에는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포함되었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전 교과와 연계하며, 고등학교에서는 독립 교과목 신설 가능성도 담고 있다. 


그럼에도 국내 미디어 리터러시의 전반적 발전 수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많은 연구자와 실천가들은 미디어 리터러시 개념의 이론적 정립, 실천적 교육 방안의 구체화, 정책 거버넌스의 통합, 관련 부문 간 유기적 협력 체계 구축, 교육과정 내 제도적 안착 등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들은 아직 실질적인 정책 실행이나 제도화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담당할 전문 인력의 양성 및 배치 문제는 정책적 의제로조차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공지능(AI) 기술은 빠른 속도로 일상과 교육 현장에 침투하고 있다. 초·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이 논의되고, 다양한 형태의 AI 교육이 시도되고 있지만 제대로 된 방향인지는 의문이다. 생성형 인공지능, 알고리즘 기반 추천 시스템, 자동화된 정보 생산 등은 오늘날 미디어 환경의 핵심 요소로 작동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이용자는 단순한 기술 활용을 넘어서는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을 갖춰야 한다. 알고리즘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인공지능 기술의 윤리적 문제나 사회적 영향력은 어떠한지 등을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성찰할 수 있는 역량, 즉 AI 리터러시를 갖추어야 한다. AI 리터러시는 미디어 리터러시가 확장된 형태로 이를 위한 교육 및 정책적 대응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하지만 현재 국내 교육 정책 및 교육과정은 AI 리터러시에 대한 체계적인 논의나 실행 전략을 갖추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AI 리터러시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교육 목표 설정, 실질적인 교육 방안 마련을 위한 종합적이고 통합적인 제도가 시급하다.



최근 논문으로 A Content Analysis of Child Sexual Abuse Coverage in Vietnamese News Media (2024),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이 가짜뉴스 대응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2024)가 있다. 공저로 디지털미디어리터러시(2020)와 정치뉴스리터러시(2024)가 있고, 디지털디바이드(2022)를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