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이재준 HK교수
2020년 10월 8일
일상에서 얼마든지 혐오하고/혐오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혐오를 분명하게 의식한다. 하지만 거기서 한 발 더 내딛어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하면 그 순간 머릿속은 혼란스러워진다. 경험적 사실로 덩그러니 내 앞에 있으므로 그것의 ‘무엇(to ti en einai)’을 정의해 보려는 아리스토텔레스같은 이들에게 혐오는 아마도 골칫덩어리일 것이다. 분명하게 지각되지만 알 수 없는 그것은 우리가 흔히 정서 혹은 감정(emotion)이라 부르는 마음 상태이다.
물론 우리는 기쁨이니 슬픔이니 하는 이런저런 정서들을 머리에 떠올릴 수 있고 그 말들로써 소통할 수도 있다. 정서들은 마치 표상이나 재현, 심지어 기호처럼 유통되고 소비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정서들이 지시하고 있는 대상 앞에서 우리는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바로 그곳에는 정서들을 생산한 명료하지만 모호한(clear-obscure) 의식의 밑바닥들이 있다.
18세기 라이프니츠-볼프주의자들은 이것을 ‘미세지각(petit perception)’이라 불렀다.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에서 이것을 ‘미분적 무의식’이라 부르고, 다시 벵센느대학에서의 스피노자 강연에서는 ‘아펙트(affect)’과 ‘아펙시옹(affection)’에 대해 언급한다. 물질과 감각(sensation)의 연속성에서 세계의 정서 흐름을 파악하려는 관점에서는, 나와 타자 사이에 작용하는 힘들의 관계가 역량(puissance)의 상승과 하락으로 제시되고 욕망과 자본의 운동이 권력(pouvoir) 관계로 해명된다.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아펙트’에 대한 담론적 관심이 거기에 있다.
철학, 심리학, 문학 등에서 정서 논의들은 이미 진행되어왔다. 하지만 『정동이론』은 그것들을 들뢰즈-가타리주의의 필터를 통과시키면서 재구조화한다. 본 세미나에서는 편집자들의 서론과 브라이언 마수미의 글, 그리고 페트리샤 클라프의 글이 다루어졌다. 각각은 아펙트 이론들의 조망, 정서의 정치학, 그리고 신물질주의의 관점에서 아펙트 개념의 적용 등에 주목한다.
다만 아펙트라는 다소 까다로운 개념에 대한 이해도가 저자들만이 아니라 번역자들 사이에서도 서로 다른 높낮이로 나타난다는 점은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종, 젠더, 노인, 장애, 질병, 물질, 기계 등에 이르는 광범위한 혐오범주들을 주파해야할 우리에게 이 책은 다양한 분석 사례와 시각을 제공해준다는 장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