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이승훈 교수(기초교양학부)
2020년 11월 6일
말은 어떻게 상처를 입히는가? 혐오 발언은 표현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므로 법으로 규제할 수 없다는 의견이 있다. 잘못된 발언이라 할지라도, 법적 규제는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혐오 발언은 표현이면서 동시에 일종의 행동이기 때문에 법적 규제 대상이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예를 들어, 매키넌은 포르노그래피는 일종의 혐오 표현으로, 여성에게 상처를 줄 뿐 아니라 재현을 통해 여성을 열등한 계급으로 둔다는 점에서 행동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리는 혐오 발언을 표현의 영역이 아니라 사법적 판단의 영역으로 이전시킨다.
주디스 버틀러는 혐오 발언의 법적 처벌을 주장하는 이러한 논의에 대하여 비판적이다. 혐오 발언에 대한 법적 규제는 ‘무엇이 혐오 표현에 해당하는가’를 결정하는 담론 권력을 사법부로 넘기게 된다. 또한 랩 음악의 검열이나 동성애의 커밍아웃 금지 등과 같이, 표현을 억압하기 위한 보수주의자들의 논리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들은 특정한 노래나 동성애의 자기 선언은 타인에게 모욕감을 일으키는 일종의 행동이기 때문에 법적 규제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주디스 버틀러는 혐오 발언이 그 의도나 내용 그대로 수용자에게 전달되고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발언 내용과 그것의 의미 사이에는 균열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혐오 발언에 대한 저항의 가능성은 이 균열에서 찾을 수 있다.
혐오 발언에 대한 공적 오용을 통해서, 우리는 그 용어들의 의미를 탈맥락화하고 재맥락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표현에 관해 고삐를 죄려는 노력은 저항을 위해 그 표현을 활용하고자 하는 정치적 충동을 꺾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