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계에 대한 인종 혐오범죄가 미국에서 심각하다.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 뉴욕 가릴 것 없이 거리나 공원에서 아시아인들을 세게 밀쳐 넘어뜨리고, 때리고, 침을 뱉고, 발로 차는 범죄가 벌어지고 있다. 가해자들은 “너희가 바이러스를 들여왔다”, “중국으로 돌아가라” 같은 인종차별 발언을 피해자들에게 퍼부었다. 아시아계를 향한 폭언과 폭행이 더욱 비열한 이유는 공격 대상이 주로 노인이나 여성이기 때문이다. 최근 뉴요커지는 아시아계 여성에 대한 ‘묻지마 폭력’을 비판하는 표지를 실었다. 아무도 없는 어두운 플랫폼에서 어린 딸의 손목을 꼭 잡고 초조하게 시계를 보며 지하철을 기다리는 모습은 아시아계 여성이 일상에서 느끼는 위험이 얼마나 심각한가 말해준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아시아계를 향한 공격을 폭발시킨 배경이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코로나19 초기 체계적인 방역에 최선을 다하기보다 ‘외부의 적’을 설정해 위기를 빠져나가려 했다. 바이러스가 우한에서 시작됐으니, ‘우한 바이러스’, ‘차이나 바이러스’라는 발언을 거듭하면서 아시아계를 감염병 온상 취급을 했다. 그 결과는 지금 벌어지는 아시아계를 향한 고삐풀린 혐오범죄다. 2020년 3월 19일부터 2021년 2월 28일 사이에 총 3,795건의 아시안 대상 혐오범죄가 보고되었고, 피해자가 여성인 사례가 남성에 비해 2.3배 높게 나타났다. 게다가 지난 3월 16일 발생한 애틀란타 총기 살인 사건은 아시아계 여성을 향한 극단적인 혐오범죄였다. 21세 백인 남성 에런 롱이 마사지숍 세 곳을 돌며 8명을 총기로 살해했고, 희생자 중 6명이 아시아계 여성이었다. 이 사건은 “아시안 혐오를 중단하라!”는 SAH(Stop Asian Hate)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 사회에서 아시아계를 비롯한 ‘유색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오래되었다. 백인 정착식민지로 출발한 미국은 원주민, 흑인, 아시아인을 구조적으로 배제해온 역사 위에 건설된 나라다. 선주민인 아메리카 인디언은 추방과 학살의 대상이었고, 흑인은 아프리카에서 팔려와 노예노동을 강요당했다. 흑인 노예제는 남북전쟁이 끝나고서야 폐지됐다. 아시아인이 미개하고 불결하고 위험한 존재라는 멸시와 공포의 이중감정은 황화론(Yellow Peril)으로 드러났다. 중국인은 19세기 말 중국인 배제법에 의해 노동 이주를 금지당했고, 12만 명의 일본계 미국인은 2차 대전 때 적국 국민이라는 이유로 수용소에 감금당했다.
정착식민주의와 인종주의를 안고 시작한 미국에서 흑인들은 형식적인 평등과 실질적인 불평등의 공존 속 구조화된 차별 아래 놓여 있다. 한편에서는 피부색 차별은 이제 없지 않냐며 ‘컬러블라인드니스(colorblindness)’를 말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흑인이면 경찰에 불심검분을 당할 확률이 몇 배나 높고, 교도소 재소자도 흑인이 많다고 한다. 교육과 직업의 기회도 결코 평등하지 않다. 2020년 5월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흑인의 생명이 중요하다”고 외치는 목소리가 드높게 울렸지만, 사실 BLM(Black Lives Matter) 운동은 수년 전부터 시작됐고, 그것은 인종차별에 항의하고 인종 정의(racial justice)를 외치는 운동의 연장선 위에 존재하는 것이다.
미국의 아시아인은 인구의 5%이고, 재미 한인은 0.6% 정도이다. 한인의 소수자 정체성 형성에 크게 영향을 끼친 사건이 1991년 LA폭동이었다. 흑인 로드니 킹이 백인 경찰에 의해 구타당하는 장면이 공개되면서 사건 초반에는 소수인종을 탄압하는 공권력과 백인우월주의, 제도적 인종주의에 대한 공동 전선이 형성되는 긍정적인 움직임이 보였다. 그러나 한인 상점주인 두순자가 흑인 소녀 나타샤 할린스를 총격해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사태는 급반전해 한인과 흑인의 대립구도가 되었고, 한인타운은 72시간 동안 흑인들의 공격을 받았다. 백인 주류사회와 공권력은 방화와 폭력, 약탈을 방관했다.
LA폭동 사건은 한인들의 자각을 불러일으켰다. 내 안에 내재한 인종적 편견, 타민족에 대한 무관심과 적대감을 성찰하고,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책임감을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계 미국인에게 있어 백인 주류사회가 자신들을 이방인 취급한다는 자각의 계기가 진주만 공격 이후 수용소 감금 경험이었다면, LA폭동은 한국계 미국인에 대한 착하고 성실한 ‘모델 마이너리티(model minority)’라는 칭찬이 사실은 구분과 배제의 언어였음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백인 사회의 교묘한 인종 간, 민족 간 ‘갈라치기’를 넘어 한인과 흑인이, 아시아인과 흑인이 인종 정의를 위해 연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SAH와 BLM의 연대가 한국 사회 안에 존재하는 외국인 혐오와 인종주의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 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염운옥
경희대학교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연구교수
대표저서 - 『낙인찍힌 몸: 흑인부터 난민까지, 인종화된 몸의 역사』 (2019), 『생명에도 계급이 있는가』(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