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라는 말이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2010년 이후이다. 그전에는 혐오시설이나 혐오식품같이 일상적 의미에서 ‘매우 싫어한다’는 뜻으로 혐오라는 말이 사용되었지만, 2010년 이후부터는 혐오표현, 혐오범죄 등과 같이 특정 집단에 대한 적대와 편견과 관련된 용어로서 혐오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영어에서도 hate가 hate speech, hate crime, hatemonger 등으로 사용될 때는 특정 집단에 대한 적대와 편견을 조장하는 행위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단, 한국에서는 ‘혐오’라는 용어가 단독으로도 사용된다는 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혐오 개념에 대한 국제적 합의는 부재하지만, 혐오표현이나 혐오범죄의 개념에 대해서 국제문서나 해외 법제에서 그 정의를 찾아볼 수 있다.
혐오표현의 경우에는 최근 유엔의 ‘혐오표현에 관한 전략과 행동계획’(2019)이라는 문서에서 “어떤 사람이나 어떤 집단과 관련하여 그들이 누구인가를 근거로, 달리 말하면 그들의 종교, 종족, 국적, 인종, 피부색, 혈통, 성 또는 기타 정체성 요소(identity factor)를 근거로 하여 이들을 공격하거나 경멸적이거나 차별적인 언어를 이용하는, 말, 문서 또는 행동으로 하는 모든 종류의 소통”이라고 정의되어 있으며, 각종 사전이나 해외 법제에서도 대동소이하다.
혐오범죄의 경우에도 같은 근거로 기존의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뜻하는 말로 사용된다. 즉, 혐오표현이나 혐오범죄의 경우에는 막연히 누군가를 싫어하거나 미워한다는 뜻이 아니라, 성별, 장애, 종교, 나이, 출신 지역, 인종, 성적 지향 등 이른바 ‘정체성 요소’, ‘차별금지사유’, 또는 ‘보호되는 속성’과 관련하여 누군가를 비하하거나 경멸하는 말 또는 같은 이유에서 발생한 범죄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혐오라는 말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는 점에 여러 차례 지적된 바 있는데, 혐오 개념의 범위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혐오 개념이 ‘정체성 요소’, ‘차별금지사유’, 또는 ‘보호되는 속성’과 관련된 개념이라는 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혐오 개념의 범위를 제한하는 또 다른 방법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한 혐오표현 리포트(2019)에서처럼, ‘차별을 정당화·조장·강화하는 효과’를 혐오 개념의 표지에 덧붙이는 것이다.
이것은 혐오표현과 혐오범죄의 본질 또는 그 해악이 차별을 조장하는 효과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 있는 제안이라고 생각된다. 그동안 혐오 개념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를 포착해 내고, 관련한 이론을 도출하고 행동을 이끌어 냈다는 것은 큰 성과다. 하지만 혐오 개념의 모호함을 비판하고 혐오의 인플레를 경고하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정체성 요소’나 ‘차별 효과’를 혐오개념의 표지에 적극 도입하는 것이 그 유력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