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깨부터 똥남아까지, 근현대 한국인의 인종차별과 멸칭의 역사

연사 : 정회옥 교수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



 한국인에게는 인종 콤플렉스가 있다. 인종 이야기가 대화의 주제로 나오는 것을 꺼려하고, 사람들을 인종적으로 위계화시키며, 인종적으로 열등하다 생각되는 집단을 멸시하며 반대로 인종적으로 우월하다고 간주되는 집단에 대해서는 선망의 자세를 갖는다. 컴플렉스(complex)가 ‘복잡’하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것처럼, 한국인의 인종 의식은 매우 복잡하며 여러 요인들이 어지럽게 얽혀있다. 


서구에서의 인종주의는 16세기 항해의 시대 개막과 맞물려서, 유럽인들이 아프리카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서서히 그들이 아프리카인들과 피부색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과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인종주의가 서구인들의 경제적, 군사적, 기술적 우월성을 합리화하는 이데올로기로 등장한 것은 18세기 이후였으며, 19세기에 들어서서 흑인은 태생적으로 열등하므로 후천적인 교육이나 환경 변화도 이들을 개선시킬 수 없다는 믿음이 일반인들 사이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18세기 이래 서구는 인종주의에 기대어 백인중심의 위계적 사회질서를 구축해왔으며, 비서구 세계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였다. 이러한 인종주의가 어떻게 해서 멀리 떨어진 아시아의 유교 사회 조선에 도달했을까?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며 또는 오히려 더 강한 모습으로 우리나라에 남아있게 되었을까?



인종주의라는 ‘외래담론의 전유와 토착화’ 과정은 1876년 이후 현재까지 약 150년 간 지속되고 있는 한국인들의 인종 컴플렉스의 진화 과정이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19세기 이래 개항, 식민지배, 해방, 한국전쟁, 분단체제, 냉전 등 격동의 소용돌이를 지나왔으며, 지난 세기 동안 한국사회가 경험한 변화는 그 정도가 매우 커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억지로 개항을 당한 후 조선의 젊은 개화 엘리트들은 서구를 숭상하고 찬양하는 서구중심주의적인 태도를 수용하였으며, 당시 서구의 지배 담론이었던 인종주의는 조선 사회의 새로운 담론으로 우리 사회에 스며들었다. 그 후 한국인들은 20세기 전반부를 통째로 스스로 자신의 생존과 존엄성을 통제할 수 없는 시대를 경험했다. 


일제 식민지배와 한국전쟁이라는 비정상적인 역사적 경험은 보다 힘이 강한 세력, 즉 서구 또는 미국에 순응하는 태도를 갖게 했다. 그런데, 우리의 서구중심적 경향은 그들의 핵심 이데올로기인 인종주의도 자각 없이 받아들이는 모순을 낳고 말았다. 또한 식민시기 태동된 민족주의는 계속 외향을 바꿔가면서 지금까지도 우리 곁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박노자, 2002, “한국적 근대 만들기-우리 사회에 인종주의는 어떻게 정착되었는가?”, <인물과 사상> 45, 159.


민족주의는 ‘우리’와 ‘타자’ 사이의 경계선 긋기를 한국인의 DNA 깊숙히 습관화시켜 놓았고, ‘우리’끼리의 결속은 쉽게 ‘타자’ 배제로 흘러가게 된다. 19세기 후반 이래의 역사적 과정 속에서 식민해방, 반공, 경제성장 등 민족적·국가적 목표를 위해 사회 전체가 동원되었으며, 이는 민족의 과잉과 타자에 대한 배제를 낳았다. 


따라서 한국에서의 인종주의는 서구의 인종주의와 같으면서도 다른 모습을 갖고 있다. 피부색을 기준으로 인간 집단을 나누고 차별하는 모습에서는 서구의 인종주의와 유사하지만, 민족, 계급, 종교, 문화와 같은 다양한 요소들과 결합하면서 한국형 인종주의는 서구와는 다른 모습으로 진화해왔다. 



우리나라의 타자화된 집단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일상적 차별을 겪고 있는데도 “우리 땅에 인종차별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대학에서 강의를 하다 보면, “우리나라 정도면 정말 외국인들에게 잘하는 차별 없는 나라 아닌가요?” “한국인들만 사는데 무슨 인종차별이 있죠?”라고 말하는 학생들을 종종 만난다. 


학생들의 ‘인종차별 없는 우리나라’라는 순수한(?) 믿음은 한국 사회의 인종주의가 비가시화되어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꽁꽁 감쳐놓은 상처는 겉에서는 잘 보이지 않아 다 나은 것 같다. 그러나, 속으로는 상처가 덧나서 고름이 차오르는 것처럼 한국식 인종주의는 그렇게 우리사회에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