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차 월례발표회
일본문학에 나타나는 포스트휴먼 페미니즘 일고
- 무라타 사야카 『소멸세계(消滅世界)』를 중심으로

발제 : 신하경(공동연구원)


  무라타 사야카(村田沙耶香)는 『편의점 인간(コンビニ人間)』(2016)이 일본의 아쿠타가와상을수상하는 등, 15편 이상의 작품(집)을 출간하며 현재 일본의 대표적 작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작품세계는 페미니즘에 바탕을 둔 가부장제 비판 및 그 너머를 그리는 ‘포스트휴먼’적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 무라타는 『방주(ハコブネ)』(2011) 등에서, 여성 섹슈얼리티의 주체되기와 대체 불가능성, 자기결정성이라는 주제를 전개하며, 그것은 포스트휴먼과의 공존으로 확장한다. ‘차이의 인정’에 기반한 ‘공존’의 가능성을 제시해 왔다.


  무라타는 『소멸세계』에서 포스트휴먼(사회)로의 변형 생성 과정을 그린다. 무라타는 이 소설에서 인공 자궁이라는 과학기술은 직접적으로 기존 사회의 섹스/섹슈얼리티/젠더 편제를 무너뜨릴 것이며, 가족제도 및 이데올로기, 성욕, 모성 등 그동안 인간의 근본적 본성이라고 여겨지던 것들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할 것이고, 그 신화를 해체하고 또 재구성해 갈 것이라고 말한다.


  이 소설의 핵심적인 문제 제기는 여기에 놓여있다. 포스트휴먼으로의 변형 생성과 섹스/섹슈얼리티/젠더의 (재)배치는 기존의 자본주의, 관리사회, 가족형태, 재생산(생식)과 육아의 주체를 관통하는 과정으로서, 당연한 말이지만, 기존 사회의 갈등 구조가 연속되거나/탈구, 혹은 전환되는 과정으로 나타날 것이다.


  무라타는 이러한 일례로 ‘돌봄’ 시스템을 살펴보고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돌봄 이론은 신자유주의적 자기책임 논리 아래에서 조에화되는 생명에 대한 강력한 저항이론으로 부각되고 있는데, 이 소설은 그러한 돌봄 시스템이 신자유주의와 포스트휴먼 곤경의 상황들에 대한 돌파구가 될 수 있는지 살펴보고 의심한다. 작가는 문제를 제기할 뿐 답을 내고 있지는 않다. 그에 대한 모색은 아마 우리 모두의 몫이 될 것이다.


  포스트휴먼으로 추동하는 과학기술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만약, 이 소설이 그리는 것처럼, 인간이 자기 재생산을 위한 물적 존재로서의 가치가 숨김없이 전면 부각되고, 욕망(성욕, 모성애, 혹은 심지어 파괴욕과 같은)이 사라지는 (자연 소멸되는) 방식으로 배치가 이루어진다면, 이러한 ‘(동물적) 하모니’ 세계에 대해 우리는 찬동할 수 있을 것인가? 혹은 역방향으로 이러한 예측 속에서 과학기술(인공 자궁)을 제한하려는 시도는 또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무라타의 작품세계에서 과학기술적 발전은 ‘포스트휴먼’ 사회로의 이행을 강제하지만, 대부분 현존 사회의 모순구조는 형태를 바꾸어가며 지속된다. 그런 의미에서 무라타가 근대의 연장선상에 존재하는 '포스트휴먼'의 개념과 전망에 대해 호의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무라타는 현존사회의 젠더적 정상/비정상 구도 속에서 출발하여, 과학기술적, 혹은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의 세계로 나아가며, (현재는 인류세적 생태의식과 접속하며) 작품세계를 확장하고 있다. 현재의 휴먼이 포스트휴먼, 혹은 비인간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추적한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그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냉정하게 사고실험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향후에도 주목의 대상이 되는 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