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차 월례발표회
독일의 이민 서사 흐름을 경유한 한국의 난민/이주민 재현 담론

발제 : 김혜진(HK연구교수)


독일에서 이주자 재현 문제 있어 가장 중요시되는 부분은 ‘당사자성’이다. 이주자의 삶을 타자의 시선이 아닌 ‘내부자-시각’에서 주체적으로 재현하는 것이 주류 사회에 새로운 관점과 영감을 제공할 수 있다는 믿음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이들의 시각에서 사회적 통합이나 균질화라는 주류 사회의 구호는 환상에 불과하며, 이것은 독일 학계에서 다문화주의와 관련하여 주목하고 있는 원론적인 ‘합일 불가능성 Inkommensurabiltät’, 즉 타자는 타자로 머물고 결코 자아가 될 수 없다는 인식과도 긴밀히 연동된다. OECD의 기준에 의하면 2024년에 한국은 다인종·다문화 국가로 분류되었지만, 다에스닉화된 사회에 대한 인식, 즉 구조적으로 불가피한 위계화된 인종적, 민족적, 문화적 타자성 문제를 적극적으로 담론화하지 않는다. 이것은 이주자 재현의 문제에서도 드러나는데, 본 발표는 1993년 실제 있었던 찬드라 사건을 재현한 박찬욱의 연출 방식을 분석함으로써 당사자성에 대한 극복, 혹은 타자에 의한 재현의 가치에 대해 논의하고자 했다. 


박찬욱의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는 네팔 이주노동자인 찬드라 꾸마리 구릉(Chandra Kumari Gurung)이 서툰 한국말 때문에 지적장애 행려자로 분류되어 6년 4개월 동안 정신병원에 갇힌 실화를 다룬 옴니버스 영화다. 사건 개요는 1992년에 단기 비자로 입국한 찬드라가 1993년 동네 분식집에서 먹은 라면값을 내지 못한 전후 사정을 어눌한 한국어로 이해시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무전취식으로 경찰에 넘겨진 후, 심문과정에서 유일하게 똑바로 대답한 찬드라 꾸마리 구릉이라는 이름이 지능이 모자란 헛소리 정도로 여겨지면서 무연고 지적장애인으로 정신병원에 이송된다. 의사의 확진 이후 1994년부터 2000년까지 6년 4개월 동안 병원과 보호소를 전전하다가 찬드라가 네팔인이라는 것을 믿어준 재활 병원 의사의 도움으로 비로소 정상인으로 판명되어 풀려날 수 있었다. 감금되어있는 동안 찬드라는 자신의 이름이 아닌 ‘선미야’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박찬욱은 찬드라 사건 대부분을 찬드라의 POV(Point of View) 쇼트로 재구성한다. 따라서 관객은 런닝타임 동안 주로 찬드라가 응시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러한 시점은 전체적으로 틱톡, 릴스와 같은 쇼트 플랫폼에서 인기 있는 POV(Point of View) 효과, 즉 시청자가 직접 그 상황 속으로 들어가서 경험하는 것 같은 몰입감을 유도한다. 이주노동자인 찬드라의 시점에서 재현되는 영상은 압도적으로 사건에 개입된 수많은 한국 사람이다. 이때 관객은 찬드라의 억울함보다 억울하게 만든 한국 사람들의 무관심과 몰이해에 더 많이 분노하게 된다. 박찬욱은 찬드라 사건에서 찬드라를 극히 제한적으로만 노출하는 방식으로, 타자에 의한 이주민 재현에서 흔히 발견되는, 사회적 소수집단을 약자로 대상화한 온정주의를 경계한다. 그러나 박찬욱은 찬드라 사건을 이방인에 대한 한국 사람의 몰이해와 무관심으로만 귀결시키는 것 또한 경계하는 듯하다. 영화 곳곳에 삽입된,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변명하거나 해명하듯 말하는 한국 사람의 인터뷰 삽입은 이야기의 흐름과 감정이입을 의도적으로 단절시킴으로써 찬드라 사건을 보다 입체적으로 관객이 바라보도록 유도한다. 지극히 평범한 모습을 한 인물들은 특별히 인종차별주의자로 보이지도 않으며, 실제 사건 경위에서도 한국인과 그다지 구별되지 않는 외모가 문제의 발단이 되었다. 소통되지 않는 ‘타자 Der Fremde’에 대한 곤혹스러움은 어쩌면 누구나 갖고 있는 보편적인 감정이라고 본다면, 여기서 근본적으로 문제시되는 것은  내재화된 자본주의적 계급의식가 장애와 비장애를 나누 차별의식이다. 시골 촌부처럼 보였다고 언급했던 까만 피부와 허름한 옷, 그리고 서툰 말은 부와 학력, 장애여부로 타자화하는 한국 사회의 민낯을 드러낸 부분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관객은 자유로운가를 성찰하도록 하는 박찬욱의 브레히트 식의 낯설게 하기는 찬드라의 사건을 있을 수 없는 괴담 같은 특정 사건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는 의식을 전달한다. 이 영화는 찬드라로 호명함으로써 전체적으로 이주민의 정체성 문제를 다루지만, 전체적으로 한국 사회의 차별의식을 고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