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차 월례발표회
동정과 연민, ‘병리화’의 안과 밖 , 1950년대 부랑아라는 존재

발제: 예지숙(HK연구교수)


2025년 8월의 월례발표회에서는 1950년대 한국 사회에서 ‘부랑아’라 불렸던 청소년들의 실태와 그들을 둘러싼 사회적 담론을 분석하고, 이들을 단순한 사회문제나 병리적 존재가 아닌 생활인으로서 살펴보았다. ‘부랑’은 직업이나 일정한 주거의 여부를 넘어 온갖 불량함을 포함하는 불균질한 것이며 지배담론에 의하여 구성되고 변용되는 가변적이고 범주적인 개념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랑인은 때로는 범죄자이기도 하고 질병을 옮기고 다니는 사람들이기도 했으며 매우 가난한 사람들을 지칭하기도 한다. 현재 혐오의 대상인 이주노동자, 빈민 등은 20세기 부랑인의 21세기적인 모습이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에는 부모를 잃고 거리를 떠도는 전쟁고아가 사회문제화되었다. 불쌍한 고아와 불량소년, 직업소년 등의 얼굴을 한 부랑아들은 거리와 시설을 오가며 자립적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도시 하층민으로 존재했다. 당시 이승만 정부는 경찰력을 통한 단속과 시설 수용으로 부랑아 문제에 대응하였다. 해외 자선 단체의 재정에 기대어 수많은 고아원, 육아원 등 수많은 고아 보호 시설이 설립되었다. 시설 수용 중심의 대응은 이전 시대와 달라진 부분이었다. 1912년부터 시작된 조선총독부의 부랑인 단속은 도시 바깥으로 내쫓는 것에 집중돼 있었다. 부랑인은 사회문제였으나, 민족운동만큼 치안에 위협이 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들을 수용할 만한 정도의 능력이 부족했다.


   냉전과 국민국가의 시대에 부랑아는 신생 국가의 미래이자 수치로 인식되었다. 또 전쟁과 절대 빈곤의 상황에서 동정과 연민의 시선이 뒤섞인 독특한 사회적 감정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이 시기에는 미국식 정신의학과 심리학의 영향으로 이들을 병리화하려는 담론이 등장하였다. 서구 이론을 무기 삼아 이들을 교정하려는 시도는 1960년대 이후에나 본격화된다. 이러한 담론 바깥에서 부랑아는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며 어른 몫을 하면서 살아가는 생활인으로 기성 사회의 감각을 내면화하고 나름의 규율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1950년대에는 빈곤이 보편적인 현실이었기 때문에, 부랑아에 대한 혐오뿐 아니라 동정과 연민이 섞여 있었고 그들은 ‘남’이 아니라 빈민가의 ‘이웃’으로 존재했다. 


  끝으로, 과거의 부랑아를 되짚는 작업은 단순한 역사적 오류의 지적이 아니라, 오늘날 노인, 이주민, 장애인 등을 향한 혐오와 차별을 밝히고 그것을 시정하려는 시도로 이어져야 한다. 비록 ‘부랑’이라는 용어는 사라졌지만, 사회적 약자를 ‘우리의 일’이 아닌 ‘저들의 문제’로 만드는 통치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