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차 월례발표회
“나는 보편적이고 중립적인 관객이에요”라는 말
: 우리 안의 인종주의

발제: 이진아(한국어문학부)



  시각문화에서 백인 재현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다루는 『화이트 -백인 재현의 정치학』의 저자 리처드 다이어는 ‘전형을 따르지 않을 권리’는 ‘사회에서 가장 특권적인 권리’라고 말한다. 다이어는, 사람을 재현한다는 것은 결국 그의 신체를 재현한다는 것인데, 현대 문화 안에서 흑인의 육체는 그의 인종으로 환원되지만, 백인은 신체적이거나 인종적인 것을 통해 구현되기는 해도 결코 인종으로 환원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비백인(non-white)과 달리 백인은 ‘색이 아닌 것’이다. 백인은 사실 색이 있지만 그 색은 보이지 않으며, 백인도 인종이지만 인종화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인간이라는 종(human race)’일 뿐이다. 그런 이유로 백인은 백인성으로 정체화되지 않으며, ‘정상성’, ‘보편성’, ‘기준’, ‘중립’이 된다. 반면, 백인 이외의 모든 인종은 타자화되며 인종화된다. 이것이 백인의 권력이며 ‘헤게모니적 백인성’이다. 헤게모니적 백인성에 대하여 다이어는 다음과 같이 비판적으로 말한다. “다른 사람들은 인종이고, 우리는 그냥 인간이다.”


이러한 백인 중심성에서 한국 연극은 자유롭지 않다. 아니, 한국 연극은 오랫동안 헤게모니적 백인성을 내면화해 왔다. 무대 위 백인 캐릭터에게는 자신을 동일시해 온 반면, 그 외의 인종은 타자화했다. 한국의 관객은, 자신은 서구 관객과 동일한 ‘보편적’ 관점에서 무대를 바라본다고 생각했고, 이를 예술을 대하는 ‘중립적’ 태도라 여겼다. 


객석은 중립적인 공간이 아니다. 한국 연극에서 인종주의와 그에 기반한 인종 재현의 문제가 가시화된 계기 중 하나는 2017년 국립극단의 ‘한민족 디아스포라 전’이다. 이 기획전은 오히려 식민주의와 백색 신화에 뿌리를 둔 인종주의로부터 한국 연극의 객석과 무대가 결코 중립적일 수 없다는 문제를 제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민족 디아스포라 전’의 문을 연 첫 작품은 <용비어천가(Songs of the Dragons Flying to Heaven)>(영진 리(Young Jean Lee) 작, 고영범 역, 오동식 연출)였다. 관객을 불편하게 만드는 도발적인 작품으로 미국 연극계에서 주목을 받는 실험적인 작가 영진 리의 2006년 작 <용비어천가>는, 백인 사회가 기대하는 아시아 여성의 스테레오 타입을 거의 자학에 가까운 자기비하적 풍자로써 비틀어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런데 무대 위 등장인물인 한국계 미국인 여성이 쏟아내는 자기 혐오적이고 인종차별적인 발언은, 객석을 가득 채우고 앉아 있을 ‘백인’ 엘리트 관객을 특정한 후 이들을 향하도록 의도된 것이었다. 이 때문에 국립극단의 객석에 앉은 한국의 관객은 이 작품이 나를 향해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즉 이것이 ‘아시아인인 나를 위한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시종 자각해야 했다. 나아가 작품이 전제하고 있는 ‘객석과 무대 사이의 인종 위계’와 ‘그 위계를 비트는 풍자’ 그 어디에도 자신을 적절하게 위치 지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 


<용비어천가>의 한국 관객이 느껴야 했던 위화감은 종종 번역극을 관람하면서 느꼈던 문화적 이질감이나 ‘한국 사회의 지금-여기’의 맥락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가 서구 번역극을 대하면서 당연하게 전제하곤 했던 ‘중립적이고 보편적인 연극’, ‘보편적 관객으로서의 우리’, ‘모두를 위한 이야기’란 기실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하는 문제였다. 즉, 우리가 우리 자신을 서구의 관객과 동일하게 ‘보편적이고 중립적인 관객’으로 존재한다고 여겨온 것이 사실 자기기만에 가까웠다는 것을, 그것이 그저 ‘헤게모니적 백인성의 내면화’였음을 깨달아야 하는 문제였다. 그날, 무대와 객석 간의 어긋남이, 무대가 상정한 관객에 우리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우리가 지금껏 외면해 왔던 인종적 위계로 구성된 세계를 직시하게 만들고, 이른바 ‘보편 관객’으로 자임하며 서구 번역극을 취해온 역사를 되돌아보게 만든 것이다. 


우리 안의 인종주의를 들여다 봄에 있어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은 ‘보편성’ ‘예술성’ ‘중립성’의 함정이다. 이 세 가지의 가치 주장은 종종 우리 안에 인종적 편견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거나 구조화된 인종주의를 승인하는 역할을 하곤 한다. “나의 기준은 오직 예술성입니다. 인종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예술은 정치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우리의 작품은 인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야말로 인종을 보지 않는[color blind] 반인종주의자입니다.” “우리는 ‘인종을 초월하는’, ‘인종적으로 객관화된’, ‘보편적인 텍스트’를 만들고자 합니다.”라는 논리는 종종 우리 안에 인종주의가 실재한다는 것을 부정하거나, 우리 사회가 구조적으로 인종적 편견과 차별을 승인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감춘다. 


한국연극은 최근 들어서야 비로소 ‘우리 안의 인종주의’를 자각하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인종적, 민족적 스테레오 타입을 재현해 온 한국연극의 역사와 그러한 역사가 감추고 있는 인종주의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최근 인종 문제를 무대화하는 새로운 방식을 고민하는 작품도 늘고 있다. 무대 위 인종 재현에 대한 문제의식과 성찰은 한국연극에서 이제 시작이다. 창작 작업뿐 아니라 극장의 정책, 제도, 제작 현장, 예술 교육 현장 등 좀 더 폭넓은 영역에서 이 문제가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