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성 헤게모니에 도전하는 무대 위 다른 몸들

이진아 교수(숙명여대 한국어문학부)


무대는 관습과 규율의 장소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무대 위 배우의 몸이다.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비율의 신체, 잘 통제된 운동성, 정확한 발성과 표준어 사용 등, 몸의 표현 가능성을 통제하고 조절하며 구현되는 배우 예술은 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상을 재현한다. 그런 까닭에 무대에 설 수 있는 배우의 몸은 역사적으로 늘 제약을 받아 왔다. 


  무대 위에 등장한 배우의 ‘보통이 아닌’ 신체적 특징, 즉 키가 너무 크거나 너무 작거나 지나치게 뚱뚱하거나 마르거나 무용수가 두 다리로 서 있지 않거나 배우가 언어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이에 대하여 특별한 해석을 부여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신체적 평균이니 표준이니 하는 문제만이 아니다. 위계와 권력의 문제다. 백인 배우가 오셀로를 연기하는 것에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지만, 흑인 배우가 햄릿을 연기하는 것에는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다. 비장애 배우가 줄리엣을 연기하는 것에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지만. 가시적인 신체 손상이 있는 배우가 줄리엣을 연기하면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무대에서 과잉 해석을 낳는 몸과 그렇지 않은 몸, 투명하고 중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몸과 그렇지 않은 몸이 있는 것이다. 


  마사 누스바움은 현실사회에서뿐 아니라 중립적이라고 여겨지는 학문과 지식의 영역에서도 이러한 차별과 배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문제 제기하며 “어떤 사람을 배제하는 것과 지식 영역에서 그들의 삶을 배제하는 것은 함께 간다. 이런 배제는 ‘자연스럽고 비정치적인 것’으로 보인다. 반면 포용을 요구하는 일은 ‘정치적 의제’를 바탕에 깔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지적한다.


이미 중심이 되어 있다는 것,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 중립적인 영역에 머물며 비가시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차별과 배제가 자연스럽고 중립적이며 비정치적으로 보인다는 뜻이다. 이러한 사실은 순수하게 예술적이고 정치적이지 않으며 중립적이라고 주장되는 ‘모두를 위한’ 연극에서 ‘모두’는 누구인가를 질문하게 한다. 무대 위 낯선 몸, 다른 몸, 장애를 지닌 몸은 이 문제를 가장 첨예하고 실천적인 방법으로 질문한다. 무대 예술이 지닌 몸에 대한 정상성 이데올로기를 반성하며 되돌아보게 만들고 전통적인 미학적, 사회적 가치에 의문을 던진다. 


  그런데 무대 예술에서 비가시화된 특권을 허물고 비장애중심주의를 해체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실천을 의미하는 것일까? 장애의 몸에 드리워진 부정적 낙인도 지우고 손상을 중립적인 것으로 만들며 특별한 문화적 해석의 영역으로부터 벗어나 정상성을 정의하는 헤게모니의 일부가 되도록 하는 일일까? 그리하여 표준성의 영역을 넓히고 장애 연극을 주류예술에 포함시키는 일일까? 그런데 ‘다른 몸’을 다른 아름다움으로 보여주는 일과 ‘비정상성’을 호기심으로 소비하려는 욕망에 부응하는 일 사이에 딜레마는 없는 것일까? 


  무대는 ‘보는 자’와 ‘보여주는 자’ 사이의 시선 권력이 존재하는 곳이다. 무대 위 ‘다른 몸’의 대상화 문제는 복잡하다. 이는 이분법적 접근이나 윤리적 당위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좋은 의도가 항상 정치적으로 옳고 정의로운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슈퍼장애인의 감동적인 인간승리의 이야기를 소비하려는 욕망과 예의 바른 태도 속에 두려움, 공포, 연민, 호기심, 매혹, 불쾌감이 뒤얽힌 호기심을 숨긴 채 구경하려는 욕망은 우리의 문화 안에 깊이 체화되어 있다. ‘우리는 모두 같은 인간이에요’라는 낭만적 휴머니즘 또한 동일성을 강조함으로써 다른 몸을 지우고, 결과적으로 정상성, 보편성의 이상을 다시 환기한다. 


  최근 한국연극계에는 장애와 예술의 관계에 대한 담론이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대한 의미 있는 응답을 보여주는 작업도 잇따르고 있다. 이들 작품이 하나같이 ‘연극적 환상’ ‘제4의 벽’을 깨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무대와 객석 간 시선 권력을 전유하고 위계를 부수기 위함이다. 몸에 대한 단순한 이분법을 해체, 복잡화하기를 시도하면서, 다른 몸의 경이로움은 전유하지만 그것을 볼거리로 만드는 대상화는 거부하는 방식을 고민한다. 오늘 한국연극에서 다른 몸과 무대 예술의 관계를 고민하는 작업들은 예술 언어의 다양성, 의사소통 방식의 다양성에 대한 탐구를 넘어 무대 예술의 근대적 관습과 이상이 지닌 모순에 대하여, 몸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에 대하여, 예술가, 예술작품, 예술이라는 제도에 대하여 미적, 윤리적, 정치적 도전을 하고 있다.



이진아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어문학부 교수

대표저서 - 『경계를 넘는 공연예술』(2017), 『오해-연극비평집』(2013), 『가면의 진실』(2008)

대표역서 - 『연극에 대해』(2012), 『체험의 창조적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배우의 작업』(2010) 『배우의 길』(2009)






-  상단 이미지: 프란츠 카프카의 드로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