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세계 너머

▲ 사진 출처: 조세희, 『침묵의 뿌리』, 열화당, 1985


이행미 (숙명인문학연구소 HK연구교수)


  인간의 경험은 이야기를 통해 전달된다. 이야기는 숫자와 통계, 특정 집단으로 명명되는 수많은 사람에게 그들의 이름과 얼굴을 되돌려준다. 그렇게 그들의 다채로운 삶은 우리 앞에 펼쳐진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우리는 공감하고, 슬픔이나 분노, 때로는 충격의 물결에 휩싸인다.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삶의 일면이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스며든다. 실로 이야기의 힘은 위대하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에는 끝이 있다. 이야기를 들으며 타인의 삶에 깊이 감응하던 순간의 질량은 이야기 세계에서 빠져나와 일상으로 돌아올 때 항상 같은 무게로 옮겨질까. 이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그 이야기를 ‘나와 우리의 이야기’로 받아들여 이전과는 다른 삶의 길을 찾아 나설까. 


  1985년에 발간된 조세희의 『침묵의 뿌리』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응이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연결하는 매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은 1980년 사북의 동원탄좌 영업소에서 발생한 노동항쟁을 둘러싼 다양한 말들과 사진을 통해 그곳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작가가 찍은 101장의 사진은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들의 감정과 생활을 담고 있다. 사진은 현장을 객관적으로 복원하지 않으므로, 사건의 전모를 이해하는 증거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진이 전달하는 것은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와 삶의 진실을 깊이 헤아리라는 윤리적 요청이다. 


  사진 속 사북 탄광촌의 풍경은 당대를 견인해 나갔던 산업화와 성장의 물결에 합류되지 못한 가장자리의 현장을 보여준다. 흑백 사진 속 가난과 낙후된 현실, 열악한 노동환경은 경제성장이라는 눈부신 신화 이전의 그림자로 덮인 고통의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발전을 향한 뜨거운 열기와 과열된 낙관이 한 시대를 점유하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되기 위해서는 이들의 가난과 불행을 외면해야만 했다.


이들이 겪은 고통에 눈 감을 때, 그들의 삶을 우리의 이야기에서 쫓아내 버릴 때에야 빛나는 신화는 성립할 수 있었다. 사북 탄광촌의 사진은 망각된 과거의 고통이 여전히 우리와 함께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현장의 사진들은 이들의 가혹한 노동 현실을 ‘가정의 행복’이나 ‘국가 발전’을 위해 인내해야 할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말한다.  


  사북의 사진들이 그들의 고통과 불행만을 재현하는 것은 아니다. 『침묵의 뿌리』에 수록된 사진 중 상당수는 타자의 얼굴을 보여준다. 탄가루가 묻은 얼굴에서 슬픔을 느끼고, 공허해 보이는 시선에서 현실의 무게로 지친 이들의 소리 없는 절규를 듣는다. 하지만 카메라를 응시하는 표정에서 현실을 담담하게 이겨내는 굳건한 의지를 엿볼 수도 있다. 해맑은 아이들의 웃음은 현재의 비극과 미래의 희망 사이에서 진동한다. 이러한 사진은 사북을 고통과 불행의 장소로만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작가는 사진과 그에 대한 해석을 의도적으로 다른 장에 배치하여, 독자가 먼저 사진만을 찬찬히 바라보게 한다. 관습적인 사유, 지배 담론에 종속된 언어의 사용을 잠시 멈추고, 사진이 담고 있는 세계와 마주하게 한다. 이어지는 장에서 작가는 사진 속 인물들의 이름과 그들이 쓴 글 등을 주석을 달아 전달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주석일 뿐이다. 그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양분된 세계의 간극을 이해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우리의 세계로 가져오는 것은 사진을 바라보는 바로 당신의 몫이다.


  조세희는 머리말에서 이 기록이 단지 작가로서가 아니라 “이 땅에 사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그동안 우리가 지어온 죄”를 말하기 위해 쓰였다고 말한다. 침묵을 깨뜨리는 일은 탁월한 통찰력과 시대정신으로 무장한 작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공동체의 구성원에게 주어진 책임이라고 말한다. 타인의 고통과 불행은 그의 개인적인 상황으로만 설명될 수 없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지금의 사회를 만들어 냈다는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아이리스 매리언 영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구조적 부정의에 대한 책임은 그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짊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상식과 도덕을 갖추고서 온건한 태도로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의 묵인 속에서 구조적 불평등은 점점 깊어진다. 나는 나도 모르게 죄인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나와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그들의 불행과 고통에 응답해야 한다. 그것은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이자, 나와 연결되어 있는 그들의 삶에 책임을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에서 출발한 정치적 행동만이 우리에게 진정한 희망을 가져온다. 


  『침묵의 뿌리』에 적힌 단절된 두 세계의 심연을 메우는 감응과 연대의 힘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울림을 던진다. 우리는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지만, 보편적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환원되지 않는 고유한 존재들이다. 각기 다른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현장의 사진은 이들의 고유한 삶의 빛깔을 읽어내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이미 말하고 있다. 그들을 침묵 속에 두는 것은 우리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이야기가 침묵에 묻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서로 다른 이들과의 공존, 다양한 말들이 오고갈 수 있는 세계는 이렇게 들리지 않는 타인의 이야기를 귀 기울이고자 하는 시도가 누적될 때 가능해진다.


  “가난한 자의 벗이 되고, 슬퍼하는 자의 새 소망이 되어라.” 


  공존과 공감의 의미를 새롭게 정초해 나가야 하는 이 시대에 『침묵의 뿌리』에 적힌 이 구절을 다시 또박또박 읽어본다. 우리는 모두에게 벗이 되고 서로의 소망이 되어야 한다. 그러한 마음가짐에서 시작된 일상에서의 실천이 좀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하지 않을까.













이행미

숙명여대 인문학연구소 HK연구교수


대표저서- 『요동치는 가족: 가족법의 탄생과 한국 근대문학의 상상력』(2023), 『상처 입은 몸』(2023, 공저), 『반영과 굴절 사이』(2022, 공저)

대표논문- 「웹툰 <웰캄 투 실버라이프>의 노년 재현과 스토리텔링 연구」(2022), 「코로나 이후의 소설과 혐오의 임계」(2021), 「전혜린의 젠더의식과 실천적 글쓰기」(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