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세와 파국주의


김홍중(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이 발표에는 파국의 문제틀을 우리 시대의 사회현실을 분석하는 중요한 개념으로 다루는 21세기 사회이론의 두 가지 사례를 소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나는 근대적 파국 속에서 태어난 사회이론 혹은 사회학이 왜 파국이라는 관점, 파국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못했는지, 그리고 21세기적 현실에서 우리가 왜 그 개념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하는지를 묻고, 그에 대한 한 사고실험을 제안하는 의미에서 다음의 두 가지 중요한 유럽 사회이론을 소개했다. 하나는 울리히 벡의 해방적 파국주의론이며, 다른 하나는 브뤼노 라투르의 가이아 이론에 기초한 생태 정치학이다.



우선, 위험사회 이론으로 서구 근대의 생태적 위기를 사고해 온 벡은 자신의 유고 『세계의 탈바꿈』에서 인류세와 기후변화를 단순한 위기가 아닌 파국으로 이해하고, 이를 해방적 계기로 전환시킬 가능성을 탐구한다. 강연에서 나는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론이 어떻게 체르노빌 참사와 긴밀한 연관을 맺으며 1980년대 유럽사회에서 이해되었는지를 소개하고, 이를 울리히 벡의 논문 “인류학적 쇼크”를 중심으로 해설하였다. 그리고, 그의 유고에 제시된 해방적 파국 개념이 어떤 점에서 새로운 이론적 시도인지, 그리고 그 함의가 무엇인지를 상세하게 서술하고, 그 세 가지 한계를 짚었다. 


이어서, 나는 라투르 사회이론에서 파국주의를 설명했다. 라투르는 ANT를 창안했으며 서구 근대성에 대한 근본 비판을 수행해 온 저명한 이론가다. 그는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인류세의 문제의식을 더 첨예하게 제시하면서 파국주의적(혹은 심지어 묵시록적) 사회이론을 시도한다. 이를 위해 그는 러브록의 가이아 가설을 재해석한다. 라투르는 가이아 이론을 ANT를 통해 재해석하고, 임계 영역으로서의 가이아라는 새로운 관점을 제안한다. 또한, 작금의 파국적 기후 레짐을 벗어나기 위한 한 가능성으로서 전쟁 모델을 제안하고, 그 주체를 생태 계급에서 찾는다. 


울리히 벡과 이들은 인류세가 사회이론에 가져온 충격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서 결국 21세기 사회이론이 파국주의적 전환을 통해 발전이 아닌 재난, 번영이 아니 파괴, 진보가 아닌 파국이라는 현실을 깊이 고뇌해야 함을 역설했다. 이상의 논의 이후에 다양한 질문들이 제기되어 그에 대해서 논의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