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금 어디에 서 있습니까


이진아(숙명여대 한국어문학부 교수)


지난여름 연구소 워크숍의 일환으로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원의 ‘쿰다 인문학’에 대한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쿰다’는 제주 말로 ‘품다’라는 의미라 했다. ‘드르쌍 내분다’ 즉 간섭하지 않고 내버려두고 살아가면서, 벗도 되고 궨당(괸당, 친인척, 이웃, 연(緣))도 되어 가며 ‘드르쿰는다’는 의미라 했다. 탐라문화원은 2019년부터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으로 ‘쿰다로 푸는 제주섬의 역사와 난민’을 주제로 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과제 설정과 지원 선정 배경에 제주 현대사 못지않게 2018년 예멘 난민의 증가와 우리 사회 난민 혐오의 급증 문제가 놓여있다고 말했다. 


우리 대학 숙명인문학연구소도 2020년부터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으로 ‘혐오의 시대, 인문학의 대응’을 주제로 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2020년 2월 숙명여자대학교에서는 법학부에 합격한 트랜스젠더 여성 A 씨가 학내의 반대 여론에 부딪혀 결국 입학을 포기하는 사건이 있었다. A 씨의 합격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직후 학내 온라인 게시판과 익명 커뮤니티 게시판은 찬반 논쟁으로 들끓었다. 그 과정에서 트랜스젠더를 향한 혐오 표현이 여과 없이 노출되었고 온라인 괴롭힘도 있었다. 여자대학교는 사회가 여성혐오를 드러낼 때마다 우선적 표적이자 혐오의 대상이 되곤 했지만, 이때처럼 학내 구성원 전체가 혐오 정서의 한복판에 놓였다는 실감을 한 적은 없었다. 무엇보다 다른 소수자에 대한 배제와 혐오가 대학 내부에서 여과 없이 표현될 수 있다는 사실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해 숙명인문학연구소는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으로 우리 사회 혐오 현상에 대한 연구과제를 시작했다.


숙명인문학연구소와 탐라문화원이 차별과 배제를 조장하는 우리 사회 혐오 현상을 연구하는 거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같은 출발점이 아닐까 싶다. 바깥에서만 바라볼 때는 모를, 납작한 이분법적 시선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논쟁과 갈등의 한복판에 선 당사자들의 경험과 시선이 살아있는 성찰적 연구 말이다. 당시 제주 예맨 난민을 향한 혐오나 트랜스젠더를 향한 혐오에는 공통의 논리가 있었다. 바로 ‘우리의 안전’이다. ‘자국민의 안전’, ‘여성의 안전’. 그러나 안전한 공간이 차별과 배제로 만들어지지 않음은 물론이다. 안전은 서로를 인정하고 평등을 보장하며 연대에 기초하여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이론이 아니다. 신뢰가 무너진 사회에서 타자에 대한 근거 없는 공포는 사람의 마음을 쉽게 흔들며, 독검댕 곰팡이가 겨울철 습기를 흡수하듯 혐오는 이를 먹고 우리 사이에서 끝없이 퍼져나간다. 


대학도, 학문도, 이제 혐오로부터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작년 12월 경희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주디스 버틀러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민원 포화로 인하여 예정되었던 강연의 장소와 시간을 학교 밖으로 옮겨야 했다. 그 과정에서 경희대학교는 ‘(교내에서의) 강연은 취소되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하기도 하였다. 이런 일은 점점 더 비일비재해지고 있다. 특히 성소수자 문제를 다루는 강연들은 자주 이러한 민원에 시달린다. 특정 강사를 표적 삼아서 이 같은 행태를 조직적으로 하기도 한다. 문제는 대학이 점점 더 쉽게 이에 굴복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미리 사전 검열로 문제를 회피하기도 한다. 해당 강사를 섭외 리스트에서 제외하거나 행사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은 어떻겠느냐는 의견이 내부에서 스스럼없이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언제나 그 이유로는 ‘학생의 안전’이 내세워진다.


당장의 민원을 잠재우는 것으로 안전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눈을 감고 외면하고 침묵함으로써 대학을 조용하고 매끈한 장소로 만드는 것이 문제의 해결이 아니란 것을 우리는 모두 안다. 나아가 이는 혐오 세력을 승인하는 일이자 이에 기꺼이 굴복하는 일이다. 그들에게 더 큰 힘을 쥐여주는 일이다. 


그런데도 대학은 무엇을 오래 무시하면 그것이 저절로 사라질 거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애써 스스로에게 주입하면서 서서히 마비되어 가고 있다. 대학 문을 걸어 잠그고 내부에 이미 존재하는 문제에는 눈을 감으며 대학 밖 사회문제, ‘그들의 혐오’를 분석한다고 말하고 있다. 내가 선 자리가 어디인지 분명히 보아야 할 때다. 독검댕 곰팡이가 습기를 더욱 빨아들여 내 발밑과 숨통을 조이기 전에, 단호히 맞서고 논쟁하고, 문제를 볕에 드러내 들여다보아야 한다. 











최근 논문 및 저서로 <한국현대연출가연구> (연극과인간, 2024) <연극의 고전 다시 읽다>(연극과인간, 2023) <국립극단 70+ 아카이빙>(수류산방, 2020) <종합교양잡지와 연극비평지의 탄생> (연극과인간, 2020) <유치진과 드라마센터: 친일과 냉전의 유산>(연극과인간 2019)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