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육성희 교수(영어영문학부)
2021년 6월 4일
출간 20주년을 기념하여 2017년에 재출간된 리처드 다이어(Richard Dyer)의 『화이트』(White)는 백인성 연구의 대표 저서로 백인(성)이 문화생산물에서 재현되는 방식을 탐색한다. 인종적 이미지 분석에서 백인이 다루어지지 않는 것은 백인이 인종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즉 백인은 특정한 인종이 아닌 인간이라는 종으로 재현 속 어디에나 있고 규범으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기독교 전통에서 마리아와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나는 신체(인간)와 정신(신)의 관계, 아리아인과 코카시아인의 기원 속에 등장하는 북유럽 산악지역의 기후와 환경이 만들어 낸 인종적 순수성과 영적 고양, 그리고 제국주의나 서부극에서 나타나듯이 물질적 세계와 역동적인 관계를 맺을 때 드러나는 진취성이 백인에게 체화된 세 가지 관념들이라고 설명한다. 백인은 인종적 특수성이 없고 보편적 인간으로 존재하기에 비가시적이며 서구 문화의 기저에서 특권적 위치를 차지한다. 이러한 백인의 비가시적인 편재성은 색인 동시에 색이 아니고, 아무 색이 아니면서 모든 색이 되는 흰색 담론에서도 이어진다.
색 담론은 실재하는 기호이면서 아니기도 한 백인의 모순적인 정체성을 사유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저자는 흰색이 색조, 피부, 상징의 세 차원에서 의미가 서로 미끄러지며 백인(성)의 권력과 이미지를 생산하고 재현하는 과정을 분석한다. 이를 위해 다이어는 고전문학에서 르네상스 회화, 20세기의 사진 기술, 1950년대 이탈리아 영화, TV 드라마, 그리고 할리우드 SF영화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자료를 망라한다. 특히 사진과 영상 미디어에서 사용하는 조명 기술과 문화를 집중적으로 분석하여 빛의 미학적 기술이 백인(성) 이미지 생산에 관여하는 방식을 드러낸다.
저자는 조명에서 필름 종류, 노출 시간, 필름 현상, 영사 과정, 메이크업, 장치 사용법 매뉴얼에 이르기까지 빛의 기술은 백인을 표준으로 삼아 발전되어 왔음을 지적하며 사진과 영상 미디어에 관습적으로 스며들어 있는 백인의 보편성을 해체한다. 이러한 해체 작업은 정상과 규범으로 존재하여 보이지 않았던 백인(성)을 낯설게 만들고 그들의 특수성을 통해 백인을 인종화하는 작업이며, 백인이 서구 문화에서 누려왔던 권력과 지배력을 약화하고 깨뜨리기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필수적인 작업이다. 다이어의 『화이트』는 인종의 논의에서 제외되었던 백인 자체를 탐구의 대상으로 삼은 선구적인 저서로, 발간 후 20여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인종차별로 얼룩진 현재를 조명할 수 있는 우리 시대의 고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