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차 월례발표회
생태적 삶의 위기에서 비인간 혐오와 공존

발제 : 이재준 (HK교수) 


  생태적 삶이 화두인 이유는 지금껏 우리 삶이 생태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살았고 또 살아질 때 발생한 곤경 때문이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나는 지금도 여전히 생태적으로 살고 있지 못한 듯하다. 여기서 생태적 삶은 생태주의 내지는 생태론(ecologism)의 입장에서 한 말이다. 그것은 충분히 담론적인데, 생태적 삶이 건강한 몸의 문제만도 그 삶에 연루된 타자에 관한 문제만도 아님을 뜻한다. 그 생태적인 삶의 문제는 언제나 자본이자 권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 삶은 이렇게 중층적으로 결정되는 인간-비인간의 연결과 그 효과로서의 구성이다.


생태주의는 환경 파괴와 훼손, 그리고 그로 인해 되돌려진 인간의 열악한 현실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부터 활황을 누렸으며, 지난 세기 동안 이설과 이론의 자격으로 논의된 다양한 생태학들, 심층생태학, 환경학, 낭만주의적/합리주의적 생태주의 등등과 관련돼 있다. 생태주의는 여전히 논쟁적이고 논쟁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생태주의의 긴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생태적 삶’이라 말로 유일하게 옹호하고 싶은 것은 지구와 연결된 인간, 인공물과 뒤엉킨 인간, 배제하고 은폐하거나 소거하려는 폐기물과 사투하는 삶, 즉 인간과 비인간(nonhuman)의 관계와 그 양상이다.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가 여기서 중요한 이유는 생태주의의 실재적인 조건이 이런 관계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생명은 홀로만 가능한 ‘홑’의 문제이지만 또한 그 홑은 오직 무엇/누구와 ‘함께하기’에 가능하다.


그리고 생태주의가 역사상 근대라는 어느 시점에서 생겨난 지식이나 사유 방식이라고 부른다면(물론 생태주의가 지시한 시간이 그렇게 인간의 시간만큼 짧지는 않을 것이지만 일단 그렇게 가정해 보더라도), 그것은 인간적인 사유의 산물이라면 거기서 비인간의 역사 또한 인간적인 생산물일 것이다. 그런 조건에서 생태주의가 문제 된다면, 결국 인간에게 연루된 비인간의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여기서, 그리고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 존재론에서, 생태적 삶의 위기를 설명하려 할 때 ‘인간의 취약함’에 관한 탈근대적 사유가 관심을 얻게 된다. (자연을 포함해서) 환경을 제어할 수 없다는 불안은 자율적 존재로 자신을 정의하고픈 근대인의 마음을 뒤흔든 유서 깊은 정동이다. 불안한 인간들을 그렇게 느끼게 만든 수많은 타자는 충분히 큰 힘으로 다가왔다. 근대인이 가장 잘했던 성찰(reflexion)이라는 그 자기-되비침의 능력 덕분에 인간적인 취약성은 그 어느 때보다 뼈저리게 느껴질 만했다. 그리고 이에 더해서 인간의 존재론적 취약성에 대한 소수 견해가 주장한 상호의존성 논의가 생태적 삶을 이해하려 할 때 무게를 더한다.


쓰레기 비인간은 생태적 삶의 위기에서 문제의 존재다. 소비자본주의 기계가 된 우리 인간들은 쓰레기 버리는 일을 부유한 삶을 자랑하듯 그리고 대수롭지 않게 여겨왔지만, 이제야 그것을 어디다 치울지 또 어떻게 치울지를 놓고 열을 올리고 있다. 인류세의 위기에서 기후변화만이 주목을 끄는 게 아니다. 쓰레기는 인류세라고 부른 지질학적 은유가 지시하고 있는 바로 그 현실의 일부다. 인류세는 지질학적 시대 구분에서, 다시 말해 땅과 빙하에 구멍을 뚫고 거기서 얻은 증거들로 지구를 설명한 그 시대 구분에서, 인간의 힘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는 생각을 말하고픈 것이다. 지구 표층은 그 모든 생산된 인공물들과 버려진 인공물들, 그리고 인간적인 것이 영향을 미친 (언젠가 우리가 ‘자연’이라 불렀던) 비인공물들로 완전히 뒤덮였다.


비인간 혐오라는 말은 혐오 연구에서마저도 낯설다. 혐오는 인간들 사이의 현상으로 여겨지곤 한다. 물론 그런 현상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로 나타나기에 심각하고 또한 진지한 문제다. 반면 예컨대 동물을 포함해서 비인간에 대한 혐오와 차별, 배제는 그저 안타깝거나 몰랐던 일들로 여겨지기 일쑤다.

대개 쓰레기는 역겹고 더러운 것들이다. 인간과 비인간의 존재론적 관계에서 그것은 기본적으로 배제된 존재다. 쓰레기는 비인간 혐오의 또 다른 주요 대상이다. 생태적 삶의 위기에서 쓰레기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일은 유의미하다. 특히 인류세 위기에서 쓰레기 자체의 배치와 역량은 눈길을 끈다.


우리 삶에서 쓰레기 비인간을 언급한다면, 한국 사회가 언제부턴가 소비를 미덕으로 삼게 된 때의 쓰레기 생산, 처리 방식과 과정, 관련 폐기물 정책 등을 고려할 만하다. 또한 쓰레기의 운동과 배치도 주요 연구 주제이다. 현실에서 쓰레기는 거시적인 방식으로 인간에게서 배제되어 저 멀리 배치되고 미시적인 방식으로 다시 인간에게 귀환한다. 관계 존재론의 관점에서도 쓰레기의 배제와 귀환의 운동은 독특하다. 인류세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물론이고, 관계 존재론의 관점에서도 비인간 혐오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