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공감



강미영(숙명인문학연구소  HK교수) 

혐오가 타인을 배제하고 차별하려는 욕망이라면 공감은 타인의 입장이 됨으로써 타인을 포용하려는 감정이므로 공감은 혐오에 대응되는 감정이자 대안으로 인식되어 왔다. 일찍이 데이비드 흄은 인간의 본질적 유사성이 우리로 하여금 타인의 고통에 상상적 공감을 한다고 하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적 인물을 바라볼 때 우리는 공감과 연민을 느끼다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하였다. 그러나 카타르시스의 감정이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아닌 자신과 타인의 불행을 분리하는 데서 오는 안도감과 쾌락의 감정임을 생각해보면, 모든 공감이 타자와의 동일시와 연민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문학적 공감이 아닌 심리적 거리두기를 향한 시도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소격효과(Effect of Estrangement)와 수빈(Darko Suvin)의 인지적 소외(Cognitive Estrangement) 등이 그 대표적 예이다. 소격효과는 관객과 등장인물 간의 동일시를 의도적으로 방해함으로써 카타르시스적 효과와 그에 파생하는 사회와의 유리를 거부하는 결과를 유도하여, 사회적 타자의 위치를 이해할 수 있는 비판능력을 갖춘 관객을 양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공감을 방해하는 극작법을 의미한다. 다코 수빈 역시 외계인과의 조우나 우주 공간으로의 시간 여행 등 현실에서 불가능한 설정을 통해 오히려 현실 사회의 부조리한 면을 낯설게 만듦으로써 이를 독자에게 다시금 상기시키는 것을 시도하였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공감이 아닌 거리두기가 오히려 타자의 상황을 윤리적으로 판단하고 이해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 된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심리적 거리두기의 기저에는 모든 문학적 공감이 혐오의 대안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깔려 있다. 혐오의 대안으로서 공감이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 없는 이유는 공감의 편파성에서 기인한다. 친밀한 관계에 있거나 혹은 중요한 집단에 의해 우리는 우리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고 또 긍정적인 감정을 경험하지만, 이러한 집단을 향한 공감이 과하게 작동하면 그것의 결과물로서 타자에 대한 혐오가 나타나게 된다. 자신이 속한 집단에만 공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혐오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으며, 그러한 자연스러운 공감에서 벗어나 타인을 향한 공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공감 없는 이해는 오만한 판단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이해 없는 공감은 극단으로 치우치기 쉽기 때문에 공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타자의 고통에 대한 이해를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 사회 안에서 공감이 중요시되는 본질적 이유는 공동체적 삶과 개인적 가치를 조화시키려고 하는 시도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시민의식과 인문학적 교육의 중요성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결국, 혐오의 해독제로서의 공감은 단순한 감정적 동일시를 넘어 개인으로서의 타인의 존재성과 우리의 유한성이 만나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 인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공감과 연민이 낯설고 이질적인 존재들에 대해서는 쉽게 발휘되지 않음을 인정하고, 인간의 유한성에 입각한 공동체의식을 통해 타인과 상호 의존하며 살아가야 함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감만능주의에서 벗어나, 공감을 본능이 아닌 의지의 소산으로 이해할 때만이 공감은 비로소 말이 아닌 행동이 되고 혐오에 맞서는 저항적 힘을 지니게 된다. 


이미지 출처 : https://www.docformats.com/wp-content/uploads/2019/01/Sympathy.png













강미영

숙명 인문학연구소  HK교수

대표역서 – [혐오의 의미] (2022) 

대표논문- [온라인 노인혐오에 대한 인문학적 분석과 대응] (2022)

[과학소설을 통한 여성 노인 담론의 해체](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