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차 세미나
천 개의 파랑

천선란 장편소설


발제: 박인찬 연구소장/영어영문학부 교수

2022.07.01


요즘 우리나라에서 과학소설의 인기가 치솟는 것은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니다. 정작 놀라운 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과학소설을 멀리하던 젊은 여성들이 주요 독자라는 점이다. 남성 작가 중심이던 과학소설계에 여성 작가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독자층도 바뀌고 있다. 여전히 획일적이고 억압적인 우리 사회에 과학소설이 대안적 사고의 실험장으로서 떠오르고 있다는 사실은 여간 고무적이지 않다.


이번 달의 세미나 도서는 최근에 김초엽과 함께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천선란의 『천 개의 파랑』(2020)이다. “동식물이 주류가 되고 인간이 비주류가 되는 지구를 꿈꾼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 작품은 인간 중심의 자본주의 과학기술로부터 밀려난 인간, 기계, 동물이 서로 의지하고 돌보는 이야기를 통해 정상성 사회의 장애인 혐오와 비인간 혐오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휴머노이드가 일상화된 미래를 배경으로 하지만 작품이 파고드는 사회는 지금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능력, 속도, 경쟁에 목숨을 건 사회를 향해 작가는 폐기될 위험에 놓인 존재들의 목소리를 빌려 “우리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라고 외친다. 반드시 같아야 할 필요가 없고, 인간이든 비인간이든 존재 자체만으로 고귀한, 천 개의 파랑만큼 다양한 존재들의 하모니가 혐오 너머의 세계를 열망하는, 아프고 외롭지만 약하지 않은 이들에게 위로와 격려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