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차 세미나
탈원전의 철학

사토 요시유키․다구치 다쿠미(2021)


발제 : 이지형(일본학 교수)

2022.10.07


  이 책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화두로 근대 산업국가 일본의 공해 문제를 계보적으로 살피고 이를 바탕으로 ‘탈원전’의 주장을 펼친다. HK월례세미나 텍스트로 이 책을 선정한 이유는 ‘탈원전’의 주장을 철학적, 통계적, 역사적 관점에서 실증적으로 펼치는 이 책이 공해가 야기하는 차별의 문제를 점검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본 HK+사업 아젠다 ‘혐오’ 문제와 접속되기 때문이다. 탈원전의 주장과 원전 재가동의 현실이 엇갈리고 논란이 격화되는 현재 시점에서 시의성이 큰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문제의식과 핵심주장을 6항목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원자력’은 그 원리에서 ‘핵’의 동의어이다. 평시 사용과 전시 사용의 구분은 명목에 불과하다.

- 원전 사고로 인한 피해는 괴멸/절멸적이며 돌이킬 수 없다.

- 전쟁과 공해는 근대 국가 및 자본(산업)의 공모에 의한 필연적 결과물로서 상호 연동한다.

- 공해가 있는 곳에서 차별이 생기는 게 아니라 차별이 있는 곳에서 공해가 생겨난다.

- 따라서 우리는 ‘탈원전’을 지향하고 실천해야 한다.


  위의 주장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은 다음과 같이 제시된다. 첫째, 원전 에너지 생산 시스템을 폐기하고 재생가능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생산 시스템으로 전환할 것. 둘째, 중앙집권적 원자력 국가 프랑스가 아니라 재생가능에너지 중심 운용의 독일 모델을 지향할 것. 셋째, 지역주민 중심의 시민발전소 운영으로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해 구조적 지역차별을 타파할 것. 결국 탈원전의 실현은 중앙집권적, 관리된 민주주의에서 분권적, 근원적 민주주의로의 변혁을 의미한다고 이 책은 주장한다.


  『탈원전의 철학』의 문제의식과 주장의 방향성에 기본적으로 동의하지만 그 실효성 측면에서 생각해 볼 문제 또한 없지 않다. 우선 이 책의 주장이 윤리적으로 옳지만 실현 가능성 측면에서 다소 이상적이고 경직된 점은 부정되기 어렵다. 탈원전을 화두로 정치, 경제, 사회, 행정 모두를 문제시해 일괄타결하려는 급진적 입장이 두드러진다. 또한 탈원전과 탈탄소(탄소중립)가 양립 가능한가라는 문제가 있다. 재생 가능 에너지(수력, 태양열, 풍력 등)만으론 현대의 산업과 일상적 삶을 지탱하기엔 한계가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공해와 전쟁이 국가와 자본에 의한 산업 근대의 필연적 결과물이라는 주장은 큰 틀에서 수긍하지만 이런 직선적 논리로 모두 담아낼 수 없는 다양하고 이질적인 차별들, 혐오들도 있음을 돌아봐야 한다는 점이다.


  다만 이러한 사고의 배경에 세계 유일의 핵폭탄 피폭국가에다 최근의 후쿠시마 원전사고까지, 핵-원자력의 공포와 그로 말미암은 차별과 혐오의 고통을 직접 앓고 있는 일본/일본인의 ‘당사자성’이 짙게 반영되어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일본 사례를 예외적 특수 사례로 치부하기엔 핵-원자력의 공포가 보편적/일상적 차원이 된 것 또한 사실이다. 일본 사례는 이제 더 이상 '타인의 삶'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