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 이지선(HK 연구교수)
2022.11.04
저자 이광석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전문대학원 교수다.
90 년대 중반부터 기술문화연구, 커먼즈, 플랫폼 노동, 기술 생태정치학, 자동화사회 등을 연구해 왔다. 비판적 문화이론 저널 『문화/과학』의 편집인이자 『포스트디지털 : 토픽과 지평』(2021), 『디지털의 배신 : 플랫폼 자본주의와 테크놀로지의 유혹』(2020), 『데이터 사회 비판』(2017)등 다수의 저서가 있으며,『사물에 수작부리기 :손과 기술의 감각, 제작 문화를 말하다』(2018), 『현대 기술, 미디어 철학의 갈래들』(2016), 『불순한 테크놀로지 : 기술정보 문화연구를 묻다』(2014) 등을 기획하고 공저했다.
『피지털 커먼즈』는 기술 · 문화 커먼즈에 대한 저자의 최근 연구를 모은 선집이다. 처음에는 지적재산권과 그 대안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했으나, 지난 10여 년 동안 디지털 및 플랫폼 사회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또 생태 위기가 대두되면서 의제 설정에 있어서도 변화가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실제로 책의 구성은 (장의 순서가 지적 여정의 흐름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변화를 증언한다. 오늘날 디지털 또는 탈물질 전환은 “사회적인 것the social”은 물론 물리/물질/신체적인 것the physical과 어떤 관계에 있고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이러한 변화로 인해 물질 전반에 대한 이해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또는 달라져야 하는가? 이러한 탈물질화/탈신체화 경향은 “물질 혐오”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 물질을 재고하고 재개념화해야 한다면 그에 대한 혐오를 비롯한 감응과 태도 또한 마찬가지이지 않겠는가? 이런 질문들을 생각하면서 이 책을 읽을 수 있다.
책은 4부와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플랫폼 질서와 커먼즈 위기”에서는 현재의 정세를 데이터 사회와 플랫폼 자본주의로 분석하고, 2부 “피지털 커먼즈의 조건”에서는 자본주의의 대안 중 하나로 간주되었던 “공유 경제”를 비판하고 진정한 대안으로서 “커먼즈”을 제시하며, 3부에서는 기존에 제시되었던 대안으로서 퍼블릭도메인이나 카피레프트 운동에서, 몽타주나 패러디 기법을 구사한 다다 등 아방가르드에서 문화 커먼즈의 역사적 전례를 찾고 있다. 여기까지가 “기술” 또는 “문화” 인클로저와 커먼즈에 관한 것이었다면, 4부 “인류세와 생태 커먼즈”에서는 인류가 “지구” 인클로저를 행사해 왔음이 인류세를 통해 여실히 드러남을 보이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서 지구 혹은 (기술)생태 커먼즈를 다룬다.
피지털은 피지컬(물질)+디지털(비물질)의 합성어다. 원래는 브랜딩 · 마케팅 용어로 온라인과 오프라인 소비의 간극을 최소화하려는 취지에서 양자가 공존하거나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체제나 영역을 가리키는데, 현재 피지컬과 디지털의 교차이자 혼합이자 연속인 우리의 일상을 지시하기에 꽤나 적절한 말이다. 디지털은 단순히 기존의 피지컬에 부가되고 그것을 보충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피지컬의 질서를 대체하거나 재편하고 있다. 바로 데이터라는 디지털 요소와 플랫폼이라는 디지털 장치에 의해서다. 이렇듯 “디지털 세계의 기술 논리가 물질계의 지형과 배치를 좌우하는 새로운 데이터사회 현실”(서문, 6)을 가리켜 저자는 피지털이라 부른다.
중세에서 근세 전환기에 있었던 토지의 사유화가 1차 인클로저였고, 지적재산권 개념의 도입으로 비물질적 생산이 사유화되면서 구축된 체제가 2차 인클로저였다면, 3차 인클로저는 고전적인 의미의 노동은 물론이고 개개인의 사생활 나아가 신체 정보까지 포괄한다. 각 개인은 자발적으로 데이터를 생산하고, 이는 빅테크 기업이 독점한 플랫폼에 의해 수집되고 전유되며, 이는 다시 각 플랫폼의 알고리즘에 따라 다시 각 개인의 의식과 행동을 지배한다. 물리적, 즉 시공간적 한계를 갖지 않는 까닭에 이 회로는 무한히 반복되고 증식된다.
이러한 디지털 및 플랫폼 인클로저에 맞서는 대안이 바로 커먼즈 또는 공통장(共通場)이다. 피지털 인클로저에 대한 대안으로서 커먼즈 또한 피지털의 속성을 갖출 것이 요청되는 것이다(3장), 도시 전체에 대해서는 “도시 커먼즈”가 되기도 하며(4장), IP 체제에 대항해서는 퍼블릭도메인과 카피레프트 등의 운동 혹은 예술에서 아방가르드 운동을 통해 “문화 커먼즈”(5장 및 6장)로 나타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인류세는 지구라는 커먼즈를 상기시키는 한편 생태 위기가 자본 그리고/또는 기술의 위기와 분리되지 않음을 일깨운다. 따라서 이에 맞설 “기술생태 커먼즈” 또는 공통장이 요청된다.